본디 소나무가 많아 송악(松岳)이라 했던가. 조선 건국 이후 줄곧 쇠락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진정한 통일 국가로서 고려의 통일 기상을 상징하는 개성. 그 개성이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화해 협력과 평화 통일의 상징으로 다시금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개성 공단 개발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일정이 다소 지체되었지만 최근 시범 단지 부지 조성 공사도 마쳤다. 하반기에는 남측 기업이 입주하여 제품을 생산하기로 되어 있는 등 예정대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사업 외적 불안 요인도 여전해 상황을 그렇게 낙관할 수만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과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이어, 미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것과 때를 같이해 탈북자 460여명이 집단 입국하면서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 장관급 회담 등 당국 간 대화가 무산되고 제11차 이산 가족 상봉 문제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나 대북 지원 단체들의 방북 사업마저도 거의 중단된 상태다. 남북 관계의 한 축인 민간 교류 역시 큰 지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개성 공단 등 남북 경협 사업은 여전히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소강 국면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남북 관계가 언제 정상화될 것이냐가 아니라 정상화 방향과 방법, 특히 남북 관계 발전 방향에 대한 정부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다. 분명 조문과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체제 문제와 직접 연관된 민감한 사안이다. 최근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대량 탈북이 김정일 정권의 평화적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시점에서 발생한 탈북자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문제였다. 정상 회담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는 ‘6.15 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 따라 발전해왔다. 그것은 정치적 화해, 즉 남북이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조문과 탈북자 문제는 이를 역행하는 것으로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남측에 대한 북측의 신뢰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화해 협력의 기조 위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과 경제 협력의 균형적 발전을 통해 남북 관계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적 화해와 정치적 신뢰가 탄탄해야만 이를 토대로 삼은 군사적 신뢰와 경제 협력도 가능하다고 본다. 화해와 신뢰는 교류와 협력의 기초이며, 상호 신뢰가 결여된 경제 협력이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는 우리 정부가 정치적 신뢰와 화해없는 경제 협력과 군사적 신뢰를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것은 화해와 신뢰 구축은 물론 민족의 화합·통일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6.15 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색된 남북 관계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 화해와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는 곧 상호 체제를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민족의 자주와 공조를 추구하는 ‘6.15공동선언’의 기본 정신에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조문 문제와 탈북자 문제도 이러한 방향에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6.15 공동선언을 존중한다는 정부의 수사가 아니라 확고한 실천이다. 남북 관계를 경색시키면서까지 야당과 일부 언론의 정치 공세, 미국의 외교 공세에 무기력하게 이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중심과 원칙을 가지고 안팎의 도전에 대응하는 정부의 능동적인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태섭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tslee@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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