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문화산업 `세계 빅5` 구호였나

내년도 문화산업 예산이 기획예산처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당초 요구액보다 1000억원이나 삭감된 1773억원으로 줄어들어 2008년까지 문화산업 ‘세계 빅5’로 발돋움하겠다는 문화산업 육성정책이 퇴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같은 무차별 예산 삭감은 정부의 정책 의지를 믿고 향후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문화 관련 업체들에 상대적인 절망감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정책에 대한 불신감마저 조장하는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최근 국책사업의 예산 심의 행태를 보면 각종 정책들에 대한 정부의 실천 의지가 의심스러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부처들이 요구한 예산안이 심의 과정에서 사업 중복 등의 이유로 삭감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발표된 전자정부 예산안도 그렇고, 이번 문화산업 예산안의 경우도 당초 요구한 예산액의 30% 이상을 우선순위에 밀린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삭감한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문화산업을 차세대 동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산업육성을 부르짖었던 정부의 정책이 ‘구호성’이 아니었나 하는 당혹감마저 들게 한다.

 작년 경주에서 열린 문화엑스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1세기는 지식과 문화 창조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문화 강국이 곧 경제 강국이 되는 문화의 세기”라며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나라를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다. 국민 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여는 성장 동력으로 문화콘텐츠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가 부처 간의 엇박자 행정으로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은 여간 유감스런 일이 아니다. 주지하는 바대로, 문화산업은 제조업의 3배나 되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현재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청년실업과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브랜드를 제고해 제조업 및 관련 산업에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주는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한류 열풍’이나 요즘 일본에서 불고 있는 ‘배용준 열풍’을 보면 문화콘텐츠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인식, 전략적 육성 차원에서 집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산업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최근 몇 년 동안 이 분야에 대한 예산을 줄이고 있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어 창작 기반이나 인력 양성 및 기술 개발 등 인프라가 취약하다. 일부 분야에서는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대부분 자본이 영세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 개발에 애로를 겪고 있다. 더구나 투자 리스크가 높고 투자비의 회수 기간도 길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데 이를 민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여력도 없다. IT제조업 분야를 제외하고는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경쟁력 있는 산업이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산업은 문화산업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쓸 곳이 많아 한정된 정부 예산을 쪼갤 수밖에 없겠지만 이번의 무차별 예산 삭감을 보면 선택과 집중에 어긋난,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은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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