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파이프 제조업체인 야콥의 자재공장. 이 회사는 20년 전부터 ERP를 구축한 대표적인 기업정보화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각종 IT시스템을 통한 정보화가 필수적이라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보화의 방법론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우리보다 앞서 기업정보화를 시작한 독일, 스페인 등 유럽 중소기업의 성공사례를 통해 국내 중소기업 정보화의 나아갈 바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독일 중서부의 빌레펠트시에 위치한 파이프 제조업체 야콥사는 외형상 정보화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굴뚝산업분야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현재 독일내 공장용 파이프 수요의 66%, 유럽시장의 30%를 차지한 야콥사의 자랑거리는 정교한 파이프 제품뿐만이 아니라 선진적인 회사업무 통합전산시스템을 이미 20년전부터 도입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컴퓨터가 미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들을 모아 놓고 내일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니 배우라고 통보했지요” 야콥사의 로타 쉴러 고문은 수천 종의 파이프부품을 효율적으로 제조, 공급하기 위해 전사차원의 전산시스템을 도입하던 20년 전을 회상했다.
이 회사는 당시로선 최신기술이었던 유닉스기반의 전산시스템으로 생산, 회계, 구매, 물류, 인사관리 등 기업 내의 모든 자원을 통합방식으로 관리하는, 지금으로 치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구축했던 것이다. 직원수 150명에 연간매출이 1500만유로(200억원)에 불과한 중소업체가 첨단 컴퓨터를 도입하자 주변에선 괜한 짓을 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야콥사가 유럽 파이프시장 선두를 유지하는데 ERP시스템은 일등공신이었다. 창고에 쌓아두는 파이프부품 종류만 4500개가 넘는 상황에서 매일 쏟아지는 주문과 재고, 판매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전산시스템은 기업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던 것이다. 야콥사는 이후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목적으로 IT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1997년께는 독일 SAP사의 ERP시스템을 새로 도입했다.
야콥사의 로타 쉴러 고문은 새로운 ERP시스템을 도입한 후 모든 업무과정이 실시간 처리되면서 기업운영비가 12% 줄어드는 등 뚜렷한 투자효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주문을 받고 배송하는 데 보통 1주일이 걸렸기 때문에 빨리 물건을 받으려는 고객이 직접 차를 몰고 공장을 오는 일도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오후 늦게 주문을 받아도 당일이나 다음날 배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이듬해 1998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해 사업영역을 글로벌화한 것도 실시간 ERP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비크(Vic)시에는 1792년에 설립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피혁 가공업체 콜로메르(Colomer)사가 있다. 콜로메르사는 지난 1999년 전사적자원관리(ERP)를 통한 통합정보시스템을 도입하면서 3세기에 걸친 기업역사상 가장 큰 업무변화를 경험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자체인력으로 전산시스템을 개발하고 필요에 따라 조금씩 기능을 확충하는 전형적인 중소기업형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해외 공장이 계속 늘어나고 사세가 커지면서 기존 전산시스템의 한계가 들어나자 경영진은 전면적인 ERP도입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결정을 내렸다.
콜로메르사의 안토니 일라 이사는 “ERP시스템 도입 전에는 해외공장의 전산시스템이 지역별로 따로 구축돼 본사와 자회사, 해외 공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가죽제품은 가공전후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환율변동에 따른 원자재 수급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콜로메르사는 당시 스페인의 유망 중소업체들이 잇따라 ERP를 도입하던 추세를 그대로 따랐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회사는 국내외 생산공장의 원자재와 완제품 가격을 모두 관리하게 됐고 2002년 스페인이 유로(Euro)화를 도입했을 때도 일체의 혼란이 없었다.작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거나 대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려면 ERP구축을 통한 기업역량의 통합운영과 효율화가 전제조건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충고했다.
한국인들이 유럽국가에 가보면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등 IT인프라에서 아직 우리보다 뒤진 측면만 보고 우월감을 갖기 쉽다.하지만 유럽경제를 이끄는 견실한 중소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쌓아온 기업 정보화의 수준은 한국 중소기업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사진 1=파이프 제조업체인 야콥의 자재공장. 이 회사는 20년 전부터 ERP를 구축한 대표적인 기업정보화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 2=스페인 피혁제조업체인 콜로메르의 임원들이 가죽 생산 공정과 IT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3=스페인 피혁제조업체인 콜로메로의 생산설비. 이 회사는 ERP를 통해 4개국에 산재된 7개 공장을 통합관리하며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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