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전자업체들이 생산기지에 이어 연구개발(R&D)기지까지 중국으로 이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이후 최근 3년간 R&D기지 이전 건수가 수 십 건에 달한다는 보도이다. 기업들이 R&D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현지 시장에 맞는 기술 개발과 현지 고급 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겠지만 기술 유출 문제나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R&D기지 중국 이전에 앞서 핵심 기술 보안 강화를 비롯한 철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기업들의 R&D기지 중국 이전으로 우려되는 것은 ‘싱크 탱크의 공동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가짜 명품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나 그간 중국기업에 의한 불법기술 유출, 복제 피해사례를 고려하면 우리의 핵심 기술 역량을 고스란히 중국에 넘겨주는 꼴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잘 알다시피 중국은 이미 첨단 분야에서 우리와의 기술 격차를 크게 줄이고 있다. 일부 제품에서는 대등한 수준에 와 있고, 거의 모든 제품에서 향후 5년 내에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더구나 엄청난 화교 자금을 앞세워 우리나라의 우수 기업들을 사냥하고, 우리가 공들여 개발한 기술은 물론 핵심 인력까지 고스란히 인수하는 등 기술 격차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고삐를 바싹 죄어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첨단 핵심기술 보안에 대한 우리들의 대처는 너무 안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기술 유출은 대부분 기술 수출 협상 단계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시 말해 중국은 치밀하게 한국에 접근하는 데 비해, 우리는 중국의 의도를 모른 채 협상을 벌이면서 무방비 상태에서 새 기술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보안에 대한 경각심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 진출할 때 블랙 박스화한 생산 기밀 전략을 수립해 큰 효과를 보는 곳이 여럿이 있어 대조적이다.
그렇다고 기술유출을 우려해 무턱 대고 R&D기지 중국 이전을 막는 것은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 굳이 인텔이 무선통신용 칩셋 랜을 통해 중국에 진출한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기업들이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이미 대세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이지만 소리없는 기술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제조업체들의 생산 설비가 중국과 동남아지역으로 옮겨감에 따라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했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인 문제까지 야기했다. 국내 기업 R&D기지의 중국 이전 문제가 향후 어떤 역기능을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R&D기지의 중국 이전은 미래의 한국을 먹여 살릴 차세대 핵심 역량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려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한 기술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기술개발 경쟁에서도 이겨야하겠지만 우리가 애써 개발한 첨단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보안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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