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업체 A사의 김민수(가명) 경영관리팀장은 최근 벤처기업인증 연장을 위해 찾아간 중소기업청에서 뜻밖의 경험을 했다.
투자유치를 근거로 인증 기간을 연장하려했던 김 팀장은 회사 전체 지분의 10%를 넘는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했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를 갖춰 중소기업청을 찾았다. 하지만 김 팀장은 지분율 10%의 기준이 투자 유치시점이 아니라 현시점이어야 하며, 따라서 “회사 전체 지분이 늘어나 10%에 모자라는 상황에서는 기간 연장을 할 수 없다”는 설명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김 팀장은 담당자에게 6개월 전 투자 유치시점을 기준으로는 10%를 넘었으며 절대 위장 투자 유치가 아님을 설명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과거 중앙행정기관의 민원창구에서 겪었던 경험에 비춰볼 때 ‘융통성’이 기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정황을 들은 담당자는 서류를 재확인한 후 유권해석을 통해 즉석에서 인증 기간 연장을 허가해 줬다. ‘규정을 위한 규정’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규정’의 차원에서 융통성이 발휘된 것이었다.<기업을 위한 규정>
통신장비업체 B사는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주관으로 이뤄진 국책 과제를 수행하면서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기술 개발이 진행되면서 일부분이 과제 초기와는 다르게 변했다는 이유로 과제사업 탈락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초기 개발안보다 더 많은 기능을 더했음에도 일부 항목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잘 마무리되긴 했지만 고압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침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게 됐다.<규정을 위한 규정>
같은 사안이라도 담당 공무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비즈니스는 정반대로 달라진다. 그만큼 긍정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희범 산자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기업 기(氣)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었다. 사흘후 가진 간부회의에서도 그는 “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공무원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산자부 직원들은 ‘노벗맨(No, but man)’이 아닌 ‘예스벗맨(Yes, but man)’으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정부부터 기업의 기를 살리는 행정, 현장주의 행정, 생산성 높은 행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장관의 현장위주의 행정은 쉴 새가 없다. 지난 1월 1일에는 새해 벽두부터 시화공단의 생산현장을 방문해 기업 근로자들을 격려했고 이후로도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자연히 산자부 공무원들의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현장 발걸음 역시 분주해졌다
기업 애로 해결 경로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다. 산자부는 올해 범정부 차원으로 기업지원단일창구서비스(G4B)시스템 구축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기업 민원 처리를 원스톱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구축된 각종 무역, 물류, 결제 등 산업기간망을 연계하고 산업정보DB를 통합 제공함으로써 기업활동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산자부는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닫고 있는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주문정차장(디지털경제부 ) mjjoo@etnews.co.kr
박영하기자(디지털산업부) yhpark@etnews.co.kr
심규호기자(디지털경제부) khsim@etnews.co.kr
윤대원기자(컴퓨터산업부) yun1972@etnews.co.kr
유병수기자(IT산업부) bjorn@etnews.co.kr
정진영기자(정보사회부) jychung@etnews.co.kr
허의원차장(부산) ewheo@etnews.co.kr
김한식기자(광주) hskim@etnews.co.kr
정재훈기자(대구) jhoon@etnews.co.kr
신선미기자(대전) smshin@etnews.co.kr
박희범기자(대전)hbpark@etnews.co.kr
◆ 산자부 홈페이지 `기업애로신고 코너`
“대민서비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산자부는 홈페이지 내에 기업애로신고 코너(http://www.mocie.go.kr/committee/proposal/proposal_list.asp)를 개설해 운영중이다. 이곳은 기업활동과 관련된 각종 불합리한 행정규제 및 법령제도와 관련된 애로 사항을 건의하는 곳이지만 지난해 기업들의 이용실적은 많지 않았다.
1년 동안 고작 15건의 민원만 접수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단순히 법에 대한 질의사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기업의 애로사항이 여러 부처에 걸쳐 복합적으로 얽혀 있거나 구조적인 제도, 관행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특정 부처에 애로사항을 건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정책평가담당관실 김희중 사무관은 “초기에는 신고 코너를 통한 규제개선 요청이 연간 200건에 이를 정도로 활발했으나 지난 98년 기업규제기본법이 발효되고 대통령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많은 부분을 소화하면서 활용 빈도가 줄어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다음달 중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기업애로 해소 특별대책기구’를 설치키로 했다. 규제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활동 관련 민원 기관간 협의체를 운영하고 산자부, 법제처, 감사원 등에 설치돼 있는 기업애로신고센터와 연계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어서 기업애로신고센터의 활용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 역시 기업애로신고 코너를 확대해 ‘기업 신문고’와 ‘산업법정’을 운영한다. 기업 신문고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 각 경제단체 민원실에 접수되는 애로사항도 접수대상에 포함한다.
산자부는 기업 신문고에 접수된 애로사항 중 매주 1∼2건을 선정한 후 산자부 장관이 주재하는 산업법정을 열어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감사원, 기업 등 당사자가 모여 기업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해결할 예정이다. 기업인이 원고를, 관련부처 공무원이 피고를 각각 맡게 되는 셈이다.
특히 이 자리에는 감사원 담당관도 배석해 판결에 따른 담당 공무원의 업무부담을 덜게 하고 행정처리의 투명성을 높일 방침이어서 기업 애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기고 - 대민서비스 개선 : Yes, but man
김무영 산자부 감사담당관 mooykim@mocie.go.kr
‘기업 기 살리기’를 위한 산자부의 혁신은 ‘Yes, but man’의 모토에서 출발한다. 대민서비스는 항상 기업의 입장에 서서 애로를 들어주고 해결해 주려는 긍정적인 자세로부터 시작돼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공무원들이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현행 법규와 제도로는 민원인의 주장을 수용하기가 어렵거나 민원인의 주장이 당초 제도의 도입취지와는 맞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산업 총괄부처인 산자부는 모든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기업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함은 물론, 기업의 민원해결에 있어서도 현행 법규와 제도에 너무 얽매이기보다는 융통성있는 규정의 해석, 현실을 감안한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 등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산자부는 각종 정책평가 등에서 다른 기관에 비해 비교적 고객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상대국에 비해 열악한 우리의 오늘날 기업활동 환경과 여건을 감안할 때 기업에 대한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검토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산자부의 주고객이며 기업활동과 관련된 민원은 질의나 법 조문 해석 등의 단순민원과는 달리 복잡한 기업활동 환경속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애로사항들이 대부분이므로 산자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를 해결하고 지원하지 못할 경우, 기업의 의욕과 사기는 저하되고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산자부의 대민서비스 혁신은 그동안 기업애로 해결의지의 부족, 담당조직 및 인력의 부족, 효과적인 해결시스템의 미비 등으로 기업애로 해결에 미흡한 점이 많았음을 인정하는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앞으로 산자부는 정부내 기업애로의 실질적인 해결창구로 자리 잡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첫째, 산자부 및 산하단체의 행정 수요자를 대상으로 민원만족도를 정기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그동안 제기된 기업애로 관련 주요 민원을 추출해 전문조사기관에 용역을 의뢰하고 분야별로 어떠한 기업애로사항이 제기되고 있는지, 담당자의 해결노력은 충분했는지 등을 점검·분석할 계획이다.
둘째, 기업에 대한 서비스 제고를 위해 공무원도 민간수준의 친절마인드를 갖추도록 외부전문가에 의한 친절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또 민간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과정에도 민원담당자들이 참여토록 해 지속적으로 고객서비스 수준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셋째, 민원처리 과정을 상시 모니터링해 처리의 지연 및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고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 부서, 기관의 평가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이는 기업애로 관련 민원이 우선적으로 처리되도록 관리하기 위함이다.
이와 더불어 참여혁신담당관실 등 전담조직이 갖춰지는 대로 우수인력을 배치해 집행부서, 산하단체 및 관련기관 협조에 이르는 전 과정의 애로 해결을 위해 민원처리시스템을 구축해 갈 계획이다.
이러한 혁신노력이 원활하게 추진됨으로써 기업애로의 해결성과가 확대되고 정부에 대한 기업의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개선노력과 병행해 기업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의식개혁이 선행될 때 기업애로의 원활한 해결을 통해 ‘기업 기 살리기’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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