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한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아마도 가요관계자들은 2003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해로 기억할 것이다. 만나는 가요 관계자들마다 ‘회복불능’ ‘공멸’ ‘절망’` 등 우울한 언어들만을 토해낸 1년이었다. 앨범마다 시장에서 잇달아 참패하자 제작자들은 좌절을 호소했고 그나마 희망이었던 공연분야도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길은 보이질 않았다.
음반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존재라고 해봐야 브라운아이드소울·빅마마·세븐·휘성·이수영·보아·이효리·렉시 등과 상반기에 슈퍼스타로서 체면치레한 김건모·조성모에 불과했다. 이들 가운데 올해 가장 인상적인 흥행실적을 남긴 양현석사단(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빅마마와 세븐만이 신인이었고 나머지는 기성가수들이었다.
빅마마는 일그러진 비주얼 풍토를 비웃으며 가창력의 미학으로 시장을 관통, 음악 팬들의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극심한 신인 스타 부재가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흔히 가요계에서 새얼굴은 시장상황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주목할 신인이 적었다는 사실은 시장의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다는 확실한 방증이었다.
노장들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정선·전인권·한영애·김범룡·한동준 등이 앨범을 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조용필은 35주년 기념공연으로 대성공을 창출하면서 거장의 힘을 증명했다. “공연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가져온 결실이었다.
음악적으로는 R&B와 힙합 등 흑인음악이 대세를 완전히 장악한 한해였다. 댄스와 발라드를 막론하고 주요 인기곡은 흑인 필로 치장했다. 특히 와이지엔터테인먼트는 빅마마와 렉시가 말해주듯 흑인음악에 전력 집중해 소비자 정서를 더욱 흑인 쪽으로 내몰았다. 때문에 “이제는 흑인음악이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는 말도 나왔다.
대중음악만이 갖는 사회적 파괴력은 ‘효리선풍’으로 나타났다. 미국 팝의 비욘세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섹슈얼 치장과 율동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그는 이전까지 가요 판을 잠식한 명랑소녀들을 일거에 몰아내며 소녀 ‘워너비’를 양산하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갑자기 가요계는 효리노선을 따른 유니·채연·채소연 등 섹시한 여가수들이 속출했다. 무소불위의 효리열풍에 의해 희망의 꿈을 키우던 록밴드 바람도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올해 록은 벽두의 델리 스파이스와 러브홀릭 외에 별반 눈에 띄는 팀이 없었다.
가요계는 온통 온라인 시장의 추이에 이목이 집중된 듯 보였다. 복제권을 놓고 음악사이트와의 법정공방에 에너지를 쏟았고, 그것은 곧 앞으로는 디지털 음원을 통한 수익창출로 산업의 축이 이동될 것임을 예고했다. 올 오프라인 예상매출액은 2000억원에도 못 미친 데 반해 온라인 음악시장은 모바일 스트리밍을 합쳐 대략 4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입으로만 오르내리던 온라인과 오프라인 ‘역전’ 상황이 현실화됐다.
그것이 음반제작자들의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패러다임 변화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깊은 시름 속에 뭔가 꿈틀거리며 싹이 틀 것 같은 한해였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어쩌면 역사는 2003년을 ‘모든 것이 형상화되지 않은 채 폭풍전야처럼 지나간 한해’로 기록할지도 모르겠다.
◆ 임진모 (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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