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스노우보더

 깎아지른 벼랑, 거대한 눈사태를 뒤로 하고 급경사진 눈 위를 화살보다 빠르게 내려가는 스노우보더들. 스노우보드에는 형식과 규제를 거부하는 자유정신이 있다. 그것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기존의 규제를 뛰어 넘으려는 창조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보드 하나면 충분하다.’ 얼마나 멋진 카피인가. 처음 춤에 미쳐 나이트클럽 들락거리며 밤마다 쿵쾅거리는 음악, 무대 위의 조명, 플로어의 열기에 온몸을 맡기는 동안 나도 모를 희열에 사로잡히던 20대 초반의 저 아득한 시절을 제외하고 나를 이렇게 사로잡은 것은 없다. 대입 시험 치르고 나자 갑자기 눈앞에 쏟아진 황금들판 같은 여유. 그때 만약 스노우보드가 있었다면 맹세코 나는 슬로프로 달려갔을 것이다.

 스노우보더라면 그 내용의 단순함, 미학적 짜임새의 헐렁함에도 개의치 않고 너무나 재미있게 볼 영화가 올리아스 바르코 감독의 ‘스노우보더’다. 헬리콥터를 타고 높은 산 정상 위로 올라가서 그곳에서부터 파우더처럼 곱게 덮인 눈 위를 보드 타고 내려온다. 캐나다나 알프스에 가면 헬기 투어로 보드를 탄다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한번에 600달러 정도라고 하니까. 비싸다. 하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게 헬기로 까마득한 산 정상에 도착해서 보드를 타고 눈 위를 내려오는 것이다.

 프랑스 영화 ‘스노우보더’는 ‘트리플 X’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익스트림 스포츠를 영화로 만든 ‘익스트림 OPS’ ‘스틸’같은 영화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만들어졌다. 상당수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룬 영화가 프랑스에서 제작됐다는 것은 그쪽 사람들이 갖는 스포츠에 대한 열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처럼 웰빙족이 아니라 모험을 즐기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정신은 유럽, 특히 프랑스쪽이 강하다.

 ‘스노우보더’의 줄거리는 특별히 설명할 것 없다. 왕년의 보드 챔피언이었던 비숍의 보드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프로 선수를 꿈꾸는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는 스노우 보더 ‘가스파(니콜라스 뒤뷔셀 분)’. 그는 전설적인 보드의 일인자 ‘조쉬(그레고르 콜린 분)’에게 스카웃돼 그의 팀이 된다. 하지만 조쉬는 계략을 갖고 있다. 은퇴하기 전에 한탕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애인 ‘에텔(줄리엣 고도 분)’까지 동원해 미인계로 가스파를 유혹한다. 물론 결론은 파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핵심은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사랑의 삼각관계나 대회 우승을 누가 차지하는가가 아니라 스노우보더들의 묘기다. 공중점프해서 1440도 회전, 그러니까 4회전을 하며 멋지게 착지에 성공하는 묘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알프스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보더들의 무한질주는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스피드, 속도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화두가 아니겠는가. 뤽 베송의 ‘택시’처럼 모터를 가동시켜 얻는 속도는 이제 집어치워라. 익스트림 스포츠는 기계를 버리고 거대한 자연에 인간이 맨몸으로 도전하는 자유정신을 보여준다.

 ‘스노우보더’ 속에는 월드 프리미어 스노우보딩 챔피언십인 ‘에어&스타일’ 대회가 등장한다. 실제 대회 개최기간에 촬영 허가를 받아 찍었는데 거의 90도 경사의 깎아지른 대회 슬로프에서 프로 보더들이 펼치는 묘기는 황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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