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연애풍속을 보면 남녀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뒤바뀐 것 같다. 우연히 카페에서 연인의 얘기를 엿들어보면 남자는 질질 매달리고 여성이 도리어 강자의 입장에 서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옛날에는 은근히 뻐기던 아들 가진 엄마가 지금은 가슴을 친다. 부모 입장에서는 딸을 가져야 호강한다고들 한다.
음악계도 남녀관계의 역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60년대 최고 여가수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에 그려진 여인상은 지극히 순종적이다. 그 당시의 여성은 경제성장의 역군인 남자를 받들어야 하는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가녀린 여성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90년대 인디와 비제도권 음악의 융기가 시사하듯 모든 양상이 바뀜에 따라 노래 속의 남녀의 개념도 뒤바뀌고 있다. 사회전체가 상하, 전후, 좌우, 동서의 위상이 역전되는 현실이 음악에도 반영된 셈이다. 아마 60년대 사람들이 남자가 배신하자 관계를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김현정의 노래 ‘단칼’을 들으면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올해 가장 선풍적이었던 여가수의 두 히트곡을 비교해보자. 하나는 전국민 댄스 배경음악이 된 이효리의 ‘텐 미니츠(10분)’고 다른 하나는 렉시의 ‘애송이’다. 애송이는 지난주 한 TV음악프로에서 1위인 ‘뮤티즌송’을 차지, 연말 최고히트를 기록중이다.
텐 미니츠는 남자를 10분 안에 내 것으로 만든다는 한 여성의 도발적 내용이다. ‘순진한 내숭에 속아 우는 남자들, 베이비 다른 매력에 흔들리고 있잖아. 용기 내봐. 다가와 날 가질 수도 있잖아…내게 와봐. 이제 넌 날 안아 봐도 괜찮아…’ 이렇게 ‘날 가져봐’ ‘힘들게 둘러대지 마’ 할 정도라면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측은 여성이다. 남자에 대한 자신감이 곡 전체에 흥건하다.
이런 대담한 메시지와 이효리의 도발적 성적 어필이 딱 맞물려 이 곡에 대한 대중적 반향이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곡을 듣는 여성들은 볼 수 없는 상황이 주는 쾌감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것에 당연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효리의 텐 미니츠는 남성을 연애상대로 유혹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지만 렉시의 애송이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여기서 남자는 평등한 대상이 아닌 열등한 존재로 전락한다. ‘감정이 없어. 정열도 없어. 인물이 없어. 요즘 남자들은 똑같애. 다 애송이야… 혼자 만족하는 바보. 뒤돌아 후회하는 바보…’라며 남자를 질타하는 렉시의 손가락질은 너무도 당당하고 통렬하다. 남자를 애송이와 바보로, 즉 아래 존재로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여중생 팬은 “이 곡의 가사에 절대 공감한다”고 했다. 실제로 주변의 남학생을 보면 애송이에 그려진 대로 너무도 유치하고 뻔하고 나약한 모습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대중음악의 표현이 지금까지의 남녀평등을 낡은 가치로 물리고, 여성상위로 진행되어 갈 것임을 예고한다.
그간 세계 음악계를 특징지었던 남근 지배력은 곧 종언을 선언해야 할 것 같다. 여가수뿐 아니라 여성이 리더인 록그룹도 쏟아지고 있다. 노래 내용뿐 아니라 2004년은 ‘여성 뮤지션의 해’가 될 전망이다.
임진모(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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