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주간
부(富)는 굴릴수록 덩어리가 커진다. 부자가 밤낮으로 억척스럽게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어느 모임에서 우스개로 나온 이야기다. 100만원과 1억원을 가진 자가 투자해 얻는 이윤에는 분명 차이가 난다. 좁쌀이 백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게 나은 법이다. 꼭 그렇다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수긍이 가는 말이다.
요즘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들이 계속 좌불안석이다. 정치권에 건낸 불법대선 자금 때문이다. 자고 나면 어느 대기업이 어느 정당에 불법자금을 얼마 주었다는 뉴스가 식상할 정도로 지면을 장식한다. 기업주도 은밀히 준 대선자금이 들통났으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것이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것도 마득찮다. 설혹 해 본들 귀담아 들어줄 이도 없다.
불법자금 규모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수십억원에서 이제는 수백억원대로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돈 전달도 시골에서 배추나 마늘 등 농산물을 거래할 때 흔히 사용하는 차떼기 방식을 동원했다.
돈을 준 기업들의 입장에 이해는 간다. 권력과 관계가 서먹하면 모든 게 어렵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간의 통념상 돈이 앞서 가면 모든 길이 열린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다. 누구 탓할 일도 아니다. 전적으로 기업의 책임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악빈낙도가 선비들의 가치관이었다. 공자의 말처럼 “나물먹고 물마시고 졸리면 팔배게를 베고 자면 그만”이었다. 그것은 자급자족하던 시대의 애기다.
요새 그렇게 살면 쪽박차기 십상이다. 그 때와 가치관이 다르다. 우선 생활이 풍족해야 한다. 가난하면 찾아오는 벗도 없다. 황금만능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있어야 남에게 베푼다. 자본이 있어야 재투자도 한다. 우리가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도 잘살기 위함이다. 사흘 굶고 도둑질 안하는 사람없다고 한다.
올해 가장 인기있는 광고카피가 “부자 되세요”라고 한다. 부자 되라는 데 성질낼 사람은 없다. 부자열풍이 부는데 재벌들이 치도곤을 맞기 직전이니 아이러니다. 우리 기업들은 돈벌어 사회환원에 인색했다. 작년 30대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은 0.15%에 그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권력에는 엄청난 금액을 제공했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언제 비자금 정국이 마루리될지 모른다. 사는 게 근심 걱정의 연속이긴 하나 연말 만나는 사람마다 내년 살림살이 걱정이다. “제발 경기가 좋아져야 하는 데 큰일이다.” “정치권은 언제까지 싸움질이냐.” 등 불만의 소리가 높다.
우리 조상들은 “일한 보람은 있어도 논 흔적은 없다”고 했다. 사람은 일해야 얻는 게 있다.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세월탓만 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다. 사람에 따라 지난 삶이 회한일 수도, 보람일 수도 있다. 머문듯 가는 게 세월이라지만 그냥 가게 놔둘 수는 없다. 시간은 사용법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마찬가지다. 기업은 공익적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부 남아있는 분식결산, 편법 상속 등과 결별해야 한다. 악덕재벌이니 졸부 등의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정도를 가야 한다. 아름다운 연말을 보내기 위해.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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