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3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람들

 “장애인이 사회에서 격리돼 있다면 정보 접근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김정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그것은 정보 접근의 ‘주체’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보 격차를 줄이는 ‘수단’에만 집중해 온 그간의 정보격차 해소 운동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PC가 TV처럼 흔한 세상, 초고속인터넷 1000만회선을 돌파해 사실상 4인당 1회선씩 인터넷을 도입해 사용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언뜻 정보 접근에 관한한 완전한 민주화를 이룬 ‘디지털 아크로폴리스’에 거의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디지털 아크로폴리스에도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많은 장애인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정보 접근권을 제한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을 정상인과 분리하는 사회 구조”라고 김소장은 말한다. 아직도 많은 장애인은 장애를 이유로 사회와 격리돼 있다. 사회 활동이 없는 이들은 당연히 뭔가 정보를 얻어야할 필요도 적을 수밖에 없고 정보에 접근해야 할 동기도 약해지기 쉽다. PC와 초고속인터넷을 완벽하게 지원받았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정보 소외 계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섞여 자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단순히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직접 일어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장벽을 없애기 위해 정책연구 작업, 교육 활동, 장애인 문제 실태조사로 말없이 이 사회에 항변하고 있다. 또 장애인들이 직접 행동의 주체로 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정보 접근의 문제도 장애인들의 사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통합되도록 하는 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동권의 보장이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장벽을 허물고 장애인들의 사회 활동 기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올초 장애인들의 정보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보자료실을 새로 꾸렸다. 정보자료실은 웹 접근성의 문제를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16년간 축적된 연구소의 각종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인터넷에서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끔 하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임소연 정보자료실 팀장은 “정보 접근은 장애 등의 조건과 상관 없이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적 서비스’”라고 말한다. 그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제안에 관심이 많지만 아직 역량 부족으로 충분한 활동을 하진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임 팀장은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과제는 제품이나 소프트웨어 제작 단계부터 실제 사용자의 요구 사항이 디자인에 반영되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장애인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획하도록 하는 ‘보편적 설계’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학과 과정에서 보편적 설계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발자 및 개발 과정에 대한 임 팀장의 이러한 관심은 아마 과거 기업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일을 했기 때문인 듯 하다. 임 팀장은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후 국내 IT 기업에서 일하다 사회복지학과에 편입, 졸업 후 연구소에 합류해 지금 4년째를 맞고 있다.

 그는 인생 행로 전환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평생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마주 보고 살고 싶지는 않아서”라고 짧게 대답한다. 그러나 IT 분야의 전문 지식은 여전히 그의 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장애인 운동에 뛰어들면서도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 분야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제 정보자료실 팀장으로서 그 꿈을 이루게 된 셈이다. 임팀장은 “직장 생활 당시 동료들이 금쪽같은 주말 시간을 빼서 연구소 랜 설치 등의 작업을 자원봉사로 해결해 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정보자료실의 목미정 간사는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 ‘함께 걸음’을 인터넷에 올리고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함께 걸음’은 올해로 창간 15년을 자랑하는 전통있는 잡지로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잡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목간사는 이 잡지를 인터넷에 데이터베이스화해, 보다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뇌성마비 장애인이기도 한 목 간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앞으로 장애인 인권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희망을 털어놓았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일반 학교를 다녔다는 목 간사는 “선생님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법을 잘 몰라 나를 무시하거나 과보호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선 이들 정보자료실 직원을 포함, 약 4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이 스스로 자기 선택권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완고한 편견의 벽을 부수는 일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는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를 요구했듯이 현대의 디지털 아크로폴리스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 격차를 줄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합하려는 노력 속에서 장애인도 결정권을 가진 디지털 시민으로서 당당히 참여하게 될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에 대한 각종 문제를 연구하고 장애인 복지 증진과 권리 향상에 기여,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평등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1987년 설립됐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법제도와 정책을 연구조사해 올바르게 제·개정하며 장애인 문제의 현황조사와 복지정책 개발, 인권차별 대응 등의 활동을 벌인다. 장애 관련 각종 세미나 개최·출판 사업 등을 하며 1988년부터 월간 ‘함께 걸음’을 발행하고 있다. 장애우인권센터, 장애우가족지원센터, 장애우직업센터, 장애우문화센터 등 6개의 산하 단체가 있다.

◆ 인터뷰 - 김정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

 “장애인들의 요구에 보다 민감한 정보격차 해소 노력이 아쉽습니다.”

 김정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44)은 장애인에 대한 지금까지의 정보격차 해소 정책이 장애인들의 필요보다 물량 위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가지 장애에 따라 컴퓨터 사용에 필요한 도구나 프로그램이 다른데 정부는 비용이나 행정편의만을 고려, 일반 PC만을 보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를 들어 음성지원 장치나 확대경이 없는 일반 PC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또 손발이 불편한 사람의 경우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기능이 없는 PC는 무용지물이다.

 김 소장은 “이런 수요를 맞춰 정보 기기를 제공할 때 추가되는 비용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장애인과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의 정보격차는 도리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

 김 소장은 장애인들의 정보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보운동 및 관련 법안에 장애인들의 입장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그는 이러한 노력들이 장애인들이 보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통합되도록 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소장은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교육·직업·사회적 활동 등이 생기면 정보 접근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커질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들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위해 인내를 갖고 꾸준히 투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정렬 소장은 대학 졸업 후 장애인 운동에 투신해 지금까지 17년째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한쪽 다리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을 별로 자각하지 못했다”며 장애 관련 일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도리어 장애인 격리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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