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 안거치고 중국 등서 은밀히 수입
정식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수입된 이른바 ‘그레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제품이 범람하고 있다.
그레이 제품의 범람은 제품 자체의 사후서비스 체계가 불분명한 데다 최근 중국에서 제조된 리마킹이나 위변조된 프로세서의 유입 통로가 될 수 있어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인텔코리아와 AMD코리아 대리점에 따르면 최근 국내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유통시장에서 비정품인 ‘그레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정품의 20% 수준에 머물던 올초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서 정품 구분이 점차 어려워지는 데다 비정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유입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리점을 통해 프로세서를 공동구매해온 용산 전자단지내 전문몰들과 중견PC업체들도 최근 비정품 구매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시장 주력인 인텔 펜티엄4 프로세서 그레이 제품의 경우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로 비중이 확대됐으며 특히 그동안 채산성이 맞지 않아 수입상들이 손을 뻗지 않았던 AMD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그레이 제품이 범람하고 있어 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AMD 대리점 관계자는 “AMD 프로세서의 경우 올초까지만 해도 그레이 제품의 비중이 5% 미만으로 극소수였으나 3분기 이후 시장 곳곳에서 발견될 만큼 늘어났다”며 “특히 최근에는 사후서비스를 문의하는 소비자중 비정품 사용 비중이 60∼70% 가량에 이를 정도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 프로세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영세한 수입상이 부도가 날 경우 제품 하자에 대한 사후서비스를 받기가 어렵고 해외로 물건을 보낸다 해도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 소비자와 판매자간 분쟁의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 등지에서는 포장없이 값싼 가격에 PC업체들에게 공급되는 트레이 프로세서를 구매해 정품 박스로 위조 제작하는 사례가 보고됐다는 점에서 그레이 유입이 위조 문제로 비화될 개연성도 높아지고 있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최근 윈트로닉스 등 AMD 대리점들은 프로세서에 정품 인증 스티커를 부착해 판매하는 캠페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핵심 당사자인 인텔코리아와 AMD코리아 등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정품 확대의 몫을 오로지 대리점에게 맡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활동에 대한 지원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인텔 대리점들은 자체 비용으로 지난 1년간 정품 인증 캠페인을 펼쳤으나 최근 추가 비용 조달이 어려워 이마저도 중단한 상태다. 관련업계에서는 프로세서 업체들이 판매 확대를 위한 투자에는 적극 나서는 반면 시장 질서를 헤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텔코리아의 관계자는 “그레이 제품 유입이 늘어나면서 위조 문제로 비화될 개연성이 높아짐에 따라 대리점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소비자들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비정품 구매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