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통부의 승부수

 몆해전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 임용시 상위권 합격자들중 상당수가 정보통신부를 지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냥 지나치면 대수롭지 않지만 당사자들에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 있다. 행시 출신자들의 근무 희망 부서도 그 중 하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최고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부처는 전통적으로 재경부 같은 곳이다. 소위 ’끗발’ 있고 힘세면서도 국가 기여도가 높으며 경력 관리도 가능한 부처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당시 행시 출신 사무관들이 보여준 것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IT라는 신경제의 동력을 가동하는 핵심 부처가 정통부 입니다. 기왕 공무원이 된 이상 국가 공헌도가 가장 높은 분야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업무를 찾았읍니다. 솔직히 커 가는 조직이라 승진 등 인사에서도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읍니다.” 당시 젊은 사무관들이 털어 놓은 정통부 선호의 이유였다.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뿌듯했던 기억이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비약적 성장을 이룬 정부 부처는 단연 정보통신부다. 우정업무를 담당하는 체신부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일등부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손으로 꼽는다. 대부분은 정보통신, IT가 차지한다. 그 정책적 밑거름은 정통부의 몫이었다. 5공부터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는 동안 정부가 죽을 쑤었지만 정통부만은 제 역할을 120% 수행,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프라를 갖게 됐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지금의 정통부는 새로운 국가 아젠다를 찾아내고 이슈를 선점해야 할 전환기에 처해 있다. ‘정보화’와 CDMA라는 양대 신화를 이어 갈 또 다른 ‘그림’이 필요하다. 정보화와 CDMA는 이제 약발이 다했다. 부처가 5∼10년 동안 총력을 기울여 입안, 집행해 갈 비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물론 10년후의 먹거리를 찾겠다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제시할 수 있다. 정통부가 추진할 장기 비전임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차세대 성장동력은 부처로서 정통부의 배타적 권리와 독점적 지위를 인정해 주진 못한다. 과기부와 산자부가 함께 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다. 정통부의 설자리 치곤 입지가 좁다. 일각에선 광대역통합망(BcN)에 집중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국가 경영 아젠다로는 너무 어렵고 전문적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질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통부의 정체성이 묻어 나는 뚜렷하고도 획기적인 ‘그림’이 아직은 없다.

 이 와중에 정통부의 전통적 영역은 소리 없이 조금씩 구멍이 나고 있다. 산업부문은 산자부가 버티고 있고 통신 방송부문은 방송위원회와 피곤한 줄다리가 계속된다. 성장동력이 그렇고 국가 표준인 DTV방식까지 휘둘리고 있다. 전가의 보도인 통신사업자 규제는 어느새 공정위원회가 개입하고 있다. 정통부 파워의 산실인 정보화촉진기금 마저 이관하는 정책이 검토되고 있다. 정통부 팽창시절과는 정반대의 전방위 압박에 직면한 것이다.

 정통부의 5년후 비전은 무엇인가. 신성장동력이라면 할말 없다. 그러나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메가트렌드속에서 전문가들이 즐비한 정통부만의 비전을 제시할 순 없을까. 상대적으로 산업과 통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통신위와 언제까지 티격태격할 건가. 정책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전략적 승부수가 보고 싶다. 정통부만이 할 수 있고, 정통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정통부의 ‘그림’이 그것이다. 정통부는 지금 질적 변환을 통한 제2의 도약과 ‘안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