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풍향계]온-오프라인 업체 가격 주도권 다툼 언제까지…

 “지도 가격을 아십니까.’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지도 가격’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권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말은 제조업체가 온라인 소매점에 권고하는 소비자 판매 가격을 말한다. ‘권고’의 의미가 강하지만 사실상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가이드 라인’이나 마찬가지다.

 인터넷 쇼핑몰이 가격을 무기로 급속도로 성장하자 제조업체가 쇼핑몰의 가격 위주 판매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프라인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가격을 바로잡아 ‘시장과 가격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반면 인터넷 쇼핑몰은 유통단계를 축소해 가격을 낮추는 것은 당연하다며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조업체 ‘가격 질서 세우겠다’=경기 불황으로 소비 시장의 트렌드가 알뜰 쇼핑으로 변하면서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로 소비자가 몰리고 있다. 편리한 쇼핑과 가격이 싸다는 장점 때문이다.

 온라인 유통업체가 가격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가자 가장 당황한 쪽은 상품 공급자인 제조업체다. 매출의 일등 공신이었던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매출 부진 이유로 온라인의 무차별적인 가격 공세를 꼽고 연일 제조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에 제조업체는 가격 질서 회복을 기치로 쇼핑몰의 마케팅 정책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이후 쇼핑몰을 대상으로 가전 제품에서 모니터·LCD 등 디스플레이, PC와 주변기기까지 모든 제품의 온라인 가격을 수시로 체크하고 사전에 제시한 ‘기준(지도) 가격’ 이하로 내려갈 경우 상품 공급 중단 등의 제재를 취하고 있다. 필립스 등 외산가전업체도 쇼핑몰에 상품을 공급하는 총판과 벤더를 중심으로 ‘삼진 아웃제’를 명문화했다. 세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아예 거래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통신단말기업체 SK텔레텍은 인터넷몰에서 출고가 이하에 단말기가 판매되고 있다며 주요 인터넷몰에서 판매를 아예 중단시켰다.

 ◇인터넷 쇼핑몰 ‘시장과 소비자에게 맡겨라’=제조업체가 지도 가격, 가이드 라인을 앞세워 가격 질서 회복에 나서자 쇼핑몰업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유통의 큰 흐름이 온라인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 통제정책이 오히려 시장을 위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온라인 유통의 가장 큰 장점인 유통단계를 축소해 가격을 낮추는 행위 자체를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라는 주장이다.

 특히 대형 쇼핑몰은 제조업체의 판매 지침을 반영해 마케팅 정책을 수립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체의 과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쇼핑몰 H몰을 운영하는 현대홈쇼핑 측은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의 가장 큰 장점은 유통 단계를 축소해 이익의 일정 부분을 소비자에 돌려주는 구조”라며 “파격 세일, 최저가 판매 등 오프라인에서도 이미 가격이 붕괴된 상황에서 온라인 쪽에만 일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쇼핑몰은 제조업체가 쇼핑몰 영업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규제할 경우 이를 불공정행위로 간주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제소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또 쇼핑몰업체 공동으로 해당 업체 품목의 판매 일체를 중단하는 등 실력 대결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통신판매협회 김윤태 사무국장은 “시장의 주도권이 점차 제조에서 유통업체 쪽으로 넘어오고 있다”며 “무조건적인 가격 통제에 앞서 유통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고 이에 합당한 유통 채널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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