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전화번호를 그대로 지닌 채 통신 서비스 업체를 바꿀 수 있는 ‘번호 이동성’ 제도가 24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실시되면서 이동통신 산업 20년 역사상 최대 격변이 예상된다.
우선 그동안 통신 업체의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전화번호 변경에 드는 비용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가입사에 남아 있던 고객들의 대이동이 시작될 전망이다. 반면 떠나는 고객을 붙잡으려는 통신 업체들의 서비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편에선 사용자 정보 이전 등의 작업이 원활히 수행되지 않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쟁 촉진 노려=번호이동성은 경쟁 촉진과 통신 서비스 향상을 위해 소비자들이 통신 업체를 바꿔도 기존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동통신 업체간 뿐 아니라 유선 전화와 이동통신 업체 사이에도 번호이동성을 시행한다. 우선 100대 도시에서 실시되며 6개월 후 전국으로 확대된다.
◇큰 회오리 예상=번호이동성 제도 실시는 개인 및 기업 고객의 이동을 불러올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매니지먼트네트워크그룹(TMNG)의 조사에 따르면 개인 사용자의 약 20%인 3000만명 정도가 앞으로 1년 안에 통신 업체를 바꿀 뜻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5∼3.5% 사이인 현재 전환율의 10배 가까운 수치. 또 대기업의 25%도 서비스 업체를 바꿀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캐슬린 애버너티 FCC 위원은 최근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행되는 즉시 약 870만명의 사용자가 서비스 업체를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6대 업체가 분할하고 있는 미국 이동통신 시장 구조의 개편과 통합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통신 컨설팅 업체 텔웨어의 랜디 드로렌조 사장은 “번호이동성은 ‘완벽한 회오리(perfect storm)’라고 평했다. 또 이동통신과 유선 전화 사이의 번호이동성 시행으로 유선 전화없이 휴대폰만 쓰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버라이존처럼 유무선 사업을 모두 하는 업체가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단말기 업체들도 대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물량 공세=미국 이동통신 업체들은 무료 통화·최신 단말기 제공 등 가입자 유지를 위한 총력 경쟁 체제에 들어섰으나 한없이 이를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AT&T와이어리스는 50달러치 무료 통화에 항공 마일리지 등을 주고 있으며 싱귤러는 계약 연장 고객에게 최신 컬러 단말기를 할인가에 주고 있다. 스프린트도 새 단말기 제공과 통화 시간 연장 혜택 등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수익성에 타격을 주며 지속될 수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준비 완료?=FCC는 최근 발표한 가이드라인에서 “이동통신 업체간 번호이동은 2시간 30분만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관련 업계는 “충분히 준비됐다”고 주장하나 서로 다른 시스템의 상호 운용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는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폭증할 고객 문의에 대응할 인력과 장비의 부족도 우려된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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