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임창열 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공식요청한 날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정부의 공식발표에 앞서 프랑스 경제전문지에 ‘IMF, 한국에 지원하기로 했다’라는 기사 등이 게재되면서 감지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다 이날 처음으로 시인했다. 이틀 후 IMF실무단이 방한, 국내 금융기관 부실상태 등을 조사했다. 이후 12월 3일 최종협상이 타결되면서 IMF체제에 돌입했다. 97년에는 한보철강(1월), 삼미그룹(3월) 등이 잇따라 부도를 내는데다 10월에는 주가 500선이 붕괴됐다. 11월에는 환율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1000원을 돌파하는 등 IMF체제에 들어설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약 3년 8개월 후인 2001년 8월에 IMF 체제에서 완전히 졸업했다.
국내
1938년 화재신고 및 응급구호에 관한 전화통화의 건 제정시행
1950년 서울―평양간 전화재개
국외
1783년 피라돌 데 로제와 다를랑드 후작, 인류 최초의 비행
1959년 미―소, 과학기술 문화교류 협정에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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