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야후BB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 인터넷전화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5일 저녁 도쿄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 신주쿠역 출구에서 야후BB 판매원들이 초고속인터넷과 무선랜, 인터넷전화를 3개월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낮 일본 도쿄 외곽 미조노구치역. 흐린 날씨에도 민주당 후보의 유세가 귀청을 때렸다. 역 주변 다카츠구 조용한 주택가에도 메가폰을 단 선거 차량이 민주당 구호를 외치며 빠르게 지나쳤다. 대부분 일본인들은 의회 해산후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으나 일부에선 민주당의 약진으로 50년간 이어진 자민당 정권의 종식을 조심스레 전망했다.
같은 시각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도큐의 신주쿠역. 또 하나의 정권 교체(?)가 싹을 돋우고 있다.
NTT가 장기집권해온 고정전화 시장을 겨냥한 소프트뱅크의 ‘야후BB’의 프로모션이 뜨겁게 벌어졌다. 빨간색 부스를 차린 야후BB는 26Mbps 초고속인터넷과 무선랜, 인터넷전화인 야후BB폰 기능을 탑재된 모뎀과 3개월간 맛보기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며 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다.
나가도미 타카시(20)군은 3명으로 이뤄진 야후BB 판매팀중 책임자다. 그는 “이런 판매대가 도쿄 시내에만 1000여곳 가까이 있다”며 “오늘 하루 이곳에서만 4∼5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전했다. 거리마케팅으로 하루에만 수천여 명의 가입자를 끌어 모으는 셈이다. 야후BB의 인터넷전화 가입자수는 이미 300만명. 가입자 한명당 무려 7만엔을 쏟아붓는 야후BB가 NTT와 뜨거운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때문에 일본에서 ‘초고속인터넷 3개월 무료서비스는 기본’이라는 과열경쟁 양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야후BB를 진두지휘하는 손정의 사장의 승부수에 대해 경탄과 우려의 시선이 반반이다.
일본은 인터넷전화 시대를 맞고 있다. 인터넷전화 확산의 기반이되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규모는 2001년초 불과 65만명 수준에서 지난 6월 1000만명을 돌파했다. 소프트뱅크가 ADSL로 NTT를 자극한 결과다. 덩달아 인터넷전화 가입자수도 2001년초 8만명에서 올해 6월 500만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6000만명인 NTT고정전화 가입자의 10%에 육박하는 숫자다. 야후BB가 300만 가입자, 퓨전커뮤니케이션이 100만을 돌파해 NTT공격의 선봉에 섰다.
NTT커뮤니케이션스도 지난 7월부터 기업 시장에 발을 들인데다 영상전화 서비스도 채비를 갖췄다. 총무성이 11개 인터넷전화 사업자에 할당한 착신번호(050)수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900만개에 달한다. 다른 한켠에선 광망을 갖춘 간사이전력, 도쿄전력 등이 광인터넷(FTTH)과 광IP전화를 동시에 제공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기업고객군을 갖춘 유통회사 등도 동참했다. 인터넷전화의 거센 돌풍은 급기야 고정전화 기반의 NTT(동,서)마저 방향을 선회, 광 IP전화를 주축으로 한 차세대 전략을 세우게 몰아부쳤다.
NTT커뮤니케이션스 야마자키 마사오 솔루션 사업부 과장은 “NTT에서도 더이상 기존(PSTN) 전화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으며 인터넷전화 투자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인터넷전화도 품질이 향상되는 만큼 품질에 민감한 고객들도 결국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인터넷전화의 뜨거운 열풍이 ‘통신판도 변화의 거대한 물결’이 될 지, ‘찻잔속 태풍’에 그칠 지는 미지수다. 고정전화의 감가상각을 마친 NTT가 실제 인터넷전화에 주력할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고, ADSL망 기반 인터넷전화 품질에 대한 결론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NTT측은 “ADSL 기반의 인터넷전화가 신뢰성 측면에 아직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야노경제연구소 한국시장담당 이나가키 사치아 연구원은 “다이얼패드 열풍이 불었던 99, 2000년 한국시장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초고속인터넷의 확산과 인터넷전화의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고 인터넷망이나 전화망을 갖지 않은 야후BB가 공격적인 가격정책으로 시장을 주도한다는 분석이다. 시내전화보다는 장거리전화나 국제전화 위주로 시장이 형성된 것도 유사하다.
반면 △정부(총무성)가 역무구분·착신번호·상호접속·품질평가 등 제도정비와 규제를 시의적절하게 대응했으며 △2년전 퓨전커뮤니케이션이 주도한 인터넷전화 바람을 한차례 경험했고 △개인시장과 기업시장이 동시에 확산된다는 점 등은 ‘찻잔속의 태풍’에 그친 3년전 한국시장과 다른 점으로 지목됐다. FTTH와 ADSL망의 경쟁구도와 함께 인터넷전화 시장이 열린 것과 NTT가 인터넷전화망 중계사업의 수익모델을 만들고 광인터넷전화를 내세우는 등 적극 대응한다는 점도 다르다. 더욱이 시외전화 요금이 시내전화와 별 차이가 없어 국제전화 수익모델만 활성화한 우리나라 시장 환경과의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 착신번호, 품질평가 등 규제는 아직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일본 인터넷전화 시장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NTT커뮤니케이션스의 한 임원은 “음성전화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야후BB 등 인터넷전화 업체의 도약이 NTT에 큰 위협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야노경제연구소 인터넷전화 담당 도사 츠네히로 상급연구원은 “인터넷전화는 아직 ISP의 부가서비스 정도로 평가되나 지금까지 NTT와 KDDI정도만 제공해온 음성서비스를 야후BB 등이 가져가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면서 “NTT도 데이터와 음성으로 나뉘어진 서비스를 통합하고 조직까지 재편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도쿄=김용석 기자 yskim@etnews.co.kr>
◆ 인터뷰 - 모리가와 가츠히코 NCR서비스재팬 사장
“2년안에 일본 기업의 80%가 인터넷전화로 전환할 것으로 봅니다.”
일본 판매시점관리(POS) 시스템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 NCR재팬의 시스템 부분을 담당하는 자회사 NCR서비스 재팬은 일본에 진출한 우리나라 업체와 제휴해 인터넷전화 영업에 나섰다. 이 회사 모리가와 가츠히코 사장(60)은 “새 사업으로 확장하는 개념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는데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업진출 이유를 밝혔다.
“일본은 장거리전화가 비싸 기업들이 인터넷전화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랜서비스를 받아온 NCR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통신을 더하게 됐습니다.”
모리가와 사장은 “고객사들이 유통채널별로 인터넷전화를 서로 연결하는 수요가 많을 것”이라며 “이러한 수요에 맞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넷전화의 등장으로 통신사업자가 아니어도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니, 통신이라는 새 영역에 뛰어들어야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모리가와 사장의 말은 ‘데이터와 음성의 통합서비스’라는 격랑을 맞은 일본 통신시장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 인터뷰 - 도사 츠네히로 야노경제연구소 상급연구원
“인터넷전화는 아직 인터넷사업자(ISP)의 부가서비스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야노경제연구소에서 인터넷전화를 담당하는 도사 츠네히로 상급연구원(31)은 “인터넷전화 전환의 시발점이 되는 NTT의 전환은 아직 이르다”며 “NTT를 위협하는 야후BB가 NTT의 ADSL망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야후BB로선 정액제인 인터넷서비스에 종량제인 음성서비스를 더해 수익모델을 만든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며 “결국 NTT의 음성수익을 갉아먹는 결과가 돼 NTT에 미치는 영향이 아예 없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FTTH망에서의 광 인터넷전화를 준비하는 NTT로서는 오히려 전력회사들의 움직임이 조기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도와 관련 도사 연구원은 “규제를 완화해 NTT 설비에 저렴하게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며 “착신번호 부여와 품질평가는 아직까지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과도기적 조치로 결국 시내번호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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