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표준이 왜 통상 현안이 되고 있나

사진; 방한중인 웬디 커틀러 USTR 북아시아 담당 대표보(사진)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표준에 대한 정부의 중립성과 절차의 투명성 등을 중점적으로 거론하는 등 앞으로 우리 정부에 기술 표준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뜻을 내비쳤다.

한미 통신전문가 회의에서 기술 표준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시장개방 이후의 통상 문제가 어떻게 바뀌는 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측은 이번 회의에서 국내 표준화 절차의 공정성까지 문제 삼는 등 표준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에 나설 태세다. 이에 대해 국내 표준화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줄이고 민간기업들이 표준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왜 기술표준인가=더 이상 시장 개방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퀄컴, 플라리온 등 미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진입하는 데는 별다른 제한이 없으나 국내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의 제정방향에 따라서는 실익을 거두지 못할 수 있다. 호환이 중시되는 IT시장에서는 표준을 잃으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시장을 잃는 격인 셈이다.

 미국측은 국내 표준제정 절차에까지 감시의 시선을 집중하는 등 ‘제2의 위피’의 탄생을 사전에 단단히 막겠다는 태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시장개방이 어느정도 완전화된 현재 시점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이 국내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집중됐다”며 “자동차 분야 등에서도 안전기준, 환경기준 등 국내 시장의 규제가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IT시장이 휴대인터넷이나 LBS 등 첨단서비스의 상용화 시연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국내 시장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미국내 업체들의 요구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2의 퀄컴이 한국시장을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제2의 위피를 탄생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없나=정통부와 민간표준화기구인 정보통신기술협회(TTA) 관계자는 “국내 표준화 절차는 글로벌 표준을 완벽히 따른다. 표준을 만들 때 국제표준을 기반으로 하며 외국기업의 TTA 회원사 가입도 자유롭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통부 서광현 기술정책과장은 “미국이 문제삼은 LBS 표준의 경우 미국 산업표준을 기반으로 만들고 있으며 네오링크, 어헤드 모바일 등 외국업체나 협력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석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이 중심이 돼야 하는 표준화 절차를 전산원, 정보보호진흥원(KISA),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산하기관 관계자들이 사실상 주도하는 점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심지어 정통부 공무원들도 특별위원 형태로 일부 표준화절차에 참여하고 있다. 표준 초안 작성 지침을 시달하는 기술위원회 중에는 정통부 국장이 의장을 맡거나 ETRI, 전산원 등 산하 기관의 관계자가 의장단에 포함된 경우도 있다. 외견상 정부의 입김이 미치고 있다는 시비 소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화 포럼 관계자는 “올초 가진 자체 워크숍에서 법률전문가와의 토론을 통해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해 의장단을 전원 교수나 민간사업자로 교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표준제정시 국제표준 제정과정에서의 기술기고를 병행해 국내표준과 국제표준을 일치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기업들의 실현의지 개선돼야=전문가들은 “국내표준은 물론 국제표준 제정과정에서 민간사업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것만이 표준과 관련된 통상마찰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주도 표준화정책은 이제 접고 민간기업이 시장자율로 결정하는 선진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삼성, KT 등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업체들은 표준화 절차에 참여하는 역량이나 관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민간중심의 표준화를 표방하는 포럼들의 활동도 아직은 미약한 실정이다.

 국제표준화 과정에서도 국내업체간 ‘콤비 플레이’가 안돼 이른바 ‘말빨’이 안먹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전문가는 “기업내에서 기술인력들이 주로 담당하는 표준관련 업무는 ‘과외 업무’로 치부되는 실정”이라며 “표준 논의를 민간에 맡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 특히 경영자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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