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23)애니메이션 산업 죽이기

 9월 어느 날. 강남 압구정동 거리에 나갔다가 흔히들 ‘따오판’이라고 하는 불법 DVD를 장당 1만원에 구입하게 됐다.

 얼마전 극장에서 상영됐고 DVD로도 출시된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를 비롯해 국내에 아직 DVD로 출시되지 않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고양이의 보은’ 월트디즈니와 픽사 작품인 ‘니모를 찾아서’ 등 많은 애니메이션 타이틀이 진열돼 있었다. 아직 극장에서도 상영되지 않은 실사 작품도 숱하게 보였다. ‘화질이 어떨까’하는 호기심, 50%이상 저렴한(?) 가격 등으로 갈등을 무릅쓰고 구매는 했지만 별반 기분은 좋지 않았다.

 올해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선보였다. 너무 오래 기다려(?)왔던 애니메이션 블록버스터 ‘원더플 데이즈’를 비롯해 ‘오세암’ ‘원피스’ ‘포트리스’ ‘요랑아 요랑아’ ‘수호요정 미셸’ 등 많은 작품이 나왔다. 이 중 ‘원피스’는 일본에서도 빅 히트를 친 작품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TV·케이블·극장 등 기존 매체뿐만 아니라 위성·PDA·모바일·인터넷 등 신규 매체를 통해서도 2D, 3D, 플레시, 클레이 등 각기 다양한 소재의 애니메이션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지만 대박이 나왔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유는 있다. 기존 마케팅 환경이 그전보다 열악하게 된 것도, 또한 이에 대한 환경을 미처 대비하지 못 한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시장보다 외국을 개척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발상(?)도 맞는 얘기지만 이 장벽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TV, 극장 등 사업과 직결되는 매체에서는 마케팅과 연계해서 진행할 만큼의 날짜와 시간대를 주지 않고 기획력이 부족한 작품을 과다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투자 시장마저도 애니메이션 사업보단 수익이 보전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에는 정식으로 라이서스를 받아 상품을 생산,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불법으로 상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있고 필자 같은 사용자는 이러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구매한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처방도 미진하다.

 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법 동영상이 아무런 제재나 여과 없이 유통돼 버려 후반 사업은 미처 진행해 보지도 못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제작과 사업은 여러모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단순히 OEM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게다. 오늘도 많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다. 필자의 회사 또한 극장용 창작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여러 위험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사전 단계부터 많은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진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 애니메이션 산업의 생사는 기획, 제작에 관여하는 몇몇 회사 사람들이 아닌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격려에 달려 있다고.

 ‘원더플 데이즈’의 헤드카피 중에 나오는 ‘아주 가끔,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 하늘을 볼 수 있는 희망의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는 10월의 하루다.

 <김승욱·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대표 hook1963@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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