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내가 여자가 된 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해외 게스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이란의 마흐말바프 감독 가족이었다.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영화제는 올해 처음으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 상’을 제정했고 1회 수상자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선정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마흐말바프 감독 이외의 어떤 수상자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미 마흐말바프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는 인연이 깊다.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가베’, 제3회 개막작으로 ‘고요’, 제7회에는 ‘칸다하르’가 상영된 바 있다. 특히 올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인 큰 딸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오후 5시’와, 15세의 나이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한 최연소 감독 기록을 갖고 있는 막내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의 ‘광기의 즐거움’ 상영됐다. 1996년 설립된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는 마흐말바프 가족들과 친구들을 포함해서 총 8명의 학생들로 출발했지만, 서로의 작품에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독특한 영화가족이 형성됐다.

 국내 극장 개봉하는 ‘내가 여자가 된 날’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아내인 ‘마르지예 메시키니’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3개 부문을 수상했고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테살로니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모두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 자각이다. 9살 생일을 맞이한 꼬마 숙녀 하버, 그러나 할머니는 하버의 머리 위에 검은 천을 씌워 주며 이제부터는 늘 소꼽놀이를 같이 하던 남자 친구 하산과도 만나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하버는 이해할 수 없다. 왜 안된다는 것인가. 어제까지도 골목에서 장난치며 같이 놀았는데.

 또 여자들만 참가한 자전거 경주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는 아후,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말을 타고 달려와 경기를 포기하라고 소리친다. 그녀가 자전거 경주에 참가한 것은 집안 망신이고 가문의 수치이기 때문에 이혼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러나 아후는 못들은 체 계속 페달을 밟는다. 남자들은 이제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늙은 미망인 후러는 평생 꿈꾸어왔던 쇼핑을 한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물건을 하나씩 살 때마다 손가락에 매어둔 매듭을 하나씩 푼다. 바닷가 모래밭 위에 냉장고, 진공청소기, 욕조, 침대가 자리잡는다. 이제 후러는 그 모든 것을 배 위에 싣고 바다로 떠난다. 그러나 마지막 매듭이 무엇을 위해 맨 것인지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남성들이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검은 차도르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그녀들은 마음대로 쇼핑도 못하고 자전거도 타지 못한다. 마르지에 메시키니 감독은 그러나 목소리 높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싸우자고 소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화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훨씬 풍요로운 상징과 여백의 공간을 획득한다. 인물들의 뒤편에서 펄럭이는 바다는 그녀들이 ‘집’이라는 전통적 억압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해방의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것을 약속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을 찍기 이전에 마르지예 메시키니 감독은 큰 딸 사미라의 ‘사과’와 ‘칠판’에, 남편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고요’와 ‘문’에 각각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남편의 작품 ‘칸다하르’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내가 여자가 된 날’에서 마르지예 감독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이슬람의 율법 아래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달팽이처럼 더디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힘찬 걸음을 보여준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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