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세계사 가와기타 미노루 지음 장미화 옮김 좋은책만들기 펴냄
면직물과 더불어 유일무이한 ‘세계상품’으로 군림해 온 설탕. ‘설탕’은 어떠한 역사적·사회적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또 설탕이라는 ‘세계상품’을 축으로 한 대항해 시대 이래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돼 왔을까.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은 하나의 상품을 통해 근대의 세계사를 살펴보겠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주로 설탕과 차, 면직물과 같은 상품을 거론했지만, 이와 유사한 상품으로는 밀이나 쌀같은 기본 식량 외에 기본적인 의류도 있다. 최근에는 석유나 자동차도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는 데 이들 상품의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전 과정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상품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세계 각지 사람들이 영위했던 구체적인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었으며 어떤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과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만큼 이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더욱이 ‘설탕’과 같은 상품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왕족이나 상류계급 사람들 뿐 아니라 기층 민중의 생활, 아프리카에서 노예 사냥꾼에 의해 강제로 잡혀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눈물과 땀과 한숨으로 지새웠던 카리브해 노예들의 고단한 삶 등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세계상품’의 경우 전 세계에서 통용된 상품이므로, 그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쫓아가다보면 세계 여러 지역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돼 있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잘 알게 된다. 예컨대 설탕은 주로 카리브해에서 생산됐지만, 소비는 대부분 유럽에서 이뤄졌다.
‘세계사를 움직인 설탕(?)’
과거에는 고칼로리 식품인 설탕의 소비량이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포식의 시대’를 맞은 오늘날, 사람들은 설탕을 건강과 미용의 적으로 여기게 됐다. 물론 이 순간에도 지구의 다른 한편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으므로 현재의 세계 체제는 어딘가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유럽 등 잘사는 나라에서는 다이어트의 성공이야말로 의지력이 뛰어나고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설탕의 역사적 사명은 끝났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면직물이건 설탕이건 그것이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찬란하게 빛을 발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잊이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가 설탕과 면직물로 움직여지고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는 말이 시사하듯, 설탕이나 면직물 같은 세계 상품이 우리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이 공업의 발달처럼 인류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이들 상품을 놓고 벌어졌던 쟁탈전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 심각한 후유증이 아직까지도 지구상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서는 ‘설탕의 신비’ ‘콜럼버스의 교환’ ‘설탕혁명’ ‘삼각무역’ ‘약인가, 식품인가’ ‘차와 설탕의 랑데부’ ‘영국식 아침식사의 성립’ 등의 내용을 통해 세계 상품인 설탕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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