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도청

 1974년 8월 9일 닉슨 대통령은 하원 사법위원회의 탄핵의결에 따라 중도하차했다. 대통령이 임기중에 사임한 최초의 사건으로 미국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게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케이트 빌딩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도청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하지만 국가에 큰 훼손을 입히거나 국가간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않다. 1977년 박동선 사건의 와중에서 드러난 미국 정보기관의 청와대 도청사건은 한국민의 분노와 함께 상당 기간 한·미 관계를 껄끄럽게 했다.1995년 미·일 자동차 협상때에도 미국 CIA가 일본측 기밀회의를 도청하고 협상에 임했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5·16 이후 두번째 군사 구테타가 시작된 12·12사태(1979년)때 3군사령부가 육군 전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한 사실이 일반에 공개됐을 때에는 국민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청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다음달 4일 선거를 앞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선 시장 집무실에서 무선 도청장치가 발견돼 발칵 뒤집혔다. 우리나라에서도 휴대폰 도청문제가 국회 과기정위 국정감사의 논란거리가 됐다. 정통부 국정감사 첫날(9월 23일)부터 권영세, 박진 등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복제 휴대폰을 이용한 도청 가능성을 지적하고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CDMA 휴대폰의 도청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맞받았다. 도청은 지난 1999년 국정감사때부터 매년 도마위에 올랐지만 올해도 진상을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도청과 감청을 구분하는 잣대도 아직 명확치 않아 보인다. 지난 9일에는 시민단체들이 통화내역도 영장을 발급받아야 조회할 수 있도록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줄 것을 국회에 청원,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날로 커져만 가고 있는데 도청은 사라질 줄 모른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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