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융합기술` 전쟁](6)유럽편-독일의 연구현장

독일 정부는 2001년 융합기술의 발전을 위해 물리, 생물, 화학, 재료공학 등 관련 분야의 학제 간 연구를 지원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은 이 계획에 따라 향후 6년 간 총 580억원을 투입해 나노전자공학과, 나노재료, 분자차원의 나노기술을 생명공학 및 유전공학과 결합하고 통합하는 새로운 핵심기술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교육연구부 볼프 미카엘 카텐후젠 차관은 “나노와 바이오를 융합한 기술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미래학자에 의해 제기됐다”며 “기술의 파급영역이 너무 광범위해 경제적, 의학적, 기술적 잠재성을 측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융합기술 연구를 지원할 때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을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며 “이번 계획으로 독일의 뛰어난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런 독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바탕으로 독일 연구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같이 모든 분야에 녹아 들어가는 융합기술 개발로 과학기술 선진국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전세계 문명화를 이끌었던 구텐베르크의 고향 마인츠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고분자 연구소와 시골 마을 엔란겐의 엔란겐·뤼른베르크 대학 컴퓨터화학센터(CCC·Computer Chemistry Center).

 이들 센터는 각종 시약과 플라스크가 놓인 화학실험실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분자 하나하나의 구조를 파악하고 가장 적합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하는 화학정보학으로 금속활자의 뒤를 잇는 새로운 융합기술 키워드를 현실화하고 있다.

 ◇엔란겐·뤼른베르크 대학,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는 커리큘럼의 도입=전세계 화학정보학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엔란겐·뤼른베르크 대학 컴퓨터화학센터. 이 센터가 이런 명성을 갖게 된 데는 융합시대에 걸맞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데서 시작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우토반을 3시간여 달려 도착한 지방 도시 엔란겐. 독일의 한 지방 대학에 불과한 엔란겐·뤼른베르크에 왜 전세계 화학정보학 연구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변화’라는 단어 하나로 충분히 설명된다.

 이 대학 화학과는 현재 우리 지방대학처럼 지원하는 학생이 없어 학과를 폐쇄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90년대 초반 화학과 학생은 고작 25명이었다. 학과 존폐 위기에 놓였던 교수들이 생각해낸 복안은 화학, 생물학, 전산학을 접목한 과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팀 클록 교수는 “순수한 화학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시대는 새로운 접근의 화학을 요구했고 대학은 컴퓨터 모델링과 화학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이라며 변화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했다.

 엘란겐·뤼른베르크 대학 컴퓨터화학센터는 컴퓨터를 이용한 화학 시뮬레이션 과목을 도입해 130여 명의 학생을 유치했으며 이 분야 스타과학자를 대거 영입했다. 99년 이 대학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화학과와 생물학과를 통합하는 변혁을 감행했다. 한때 폐쇄 위기에 놓였던 지방 대학의 화학과가 ‘융합’이라는 변화를 통해 화학정보학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문대학으로 변모한 것이다.

◇막스플랑크, 학·연 협력의 산실=마인츠 막스플랑크 고분자 연구소는 독립된 연구소임과 동시에 마인츠 대학 화학과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마인츠 대학의 학생이며 교수고 막스플랑크 연구매니저이며 연구자가 된다. 대학과 연구소가 유기적인 연구를 위해 서로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대학에서 배운 기초 학문을 기반으로 연구소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기반을 닦아온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연구소와 대학의 경계를 허문 데 머무르지 않고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서로에게 수급하며 융합기술 발전의 인프라를 마련했다.

 폴리머 모델링 연구팀을 총괄하는 커트 크래머 교수는 “이곳은 이론과 실험이 융합돼 서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모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 맞춰 기초 연구에 치중했던 폴리머 연구가 나노, 화학, 컴퓨터 분야의 융합적인 응용이 이뤄져 나노구조와 정밀계측 등에 활용돼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독일에 각 세부분야별로 80여 개가 있으며 이 중 고분자 연구소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다”며 “이런 성과는 마인츠대학에서 유능한 인재를 수급한 것과 융합기술에 대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한 협력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융합 기술=화학과 생물, 전산학을 융합한 화학정보학은 초기에 신약 선도물질(Lead compounds)을 탐색하고 최적화하는 과정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정보, 지식화 연구로 시작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대량 화학데이터의 분석부터 분자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폴리머 전해질 물질을 연구하고 나아가 연료전지, 생체막에 대한 연구, 생물정보학과 연계한 총괄적인 시스템 바이올로지 등으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척하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히 실험실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뿐만 아니라 분자모델링을 통해 계산으로 얻어진 화학구조의 물리화학적 특성까지 분석할 수 있게 한다.

◆ 독일 융합기술의 선구자들

 엔란겐·뤼른베르크 대학 컴퓨터화학센터(CCC·Computer Chemistry Center) 요한 게슈타이거 박사는 1972년부터 화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한 컴퓨터화학의 선구자다.

 게슈타이거 박사 연구팀은 현재 20여 명의 석·박사연구원이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 팀은 올해 9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켐인포매틱스(Cheminformatics) 융합기술에 대한 교과서를 출판했다. 초창기에는 주로 화학 프로그램 개발을 중심으로 진행하였으나 2000년도 학과 통합 이후부터는 생물화학적인 지식기반 프로그램 개발을 주력해 신약개발 및 생물산업 연구분야를 돕고 있다.

 이 팀은 △신약 선도 물질 탐색 및 최적화 관련 프로그램 △화학구조 및 반응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지식정보 제공 알고리듬 △화학반응 예측 및 유기합성 설계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또 △생물학적 대사 경로, 대사반응 모델링 및 독성 연구 △물리화학적 데이터 예측 △적외선 흡광도, 질량분석 그래프 및 핵자기공명기 예측 시뮬레이션 △인공신경망과 유전자 알고리듬을 이용한 화학분야 적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막스플랑크 고분자 연구소 커트 크래머 교수팀은 폴리머 모델링과 이론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크래머 교수팀은 폴리머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즈가 큰 분자 즉 단백질이나 나노 사이즈의 재료물질, 생체물질과 같은 분자량이 큰 물질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특히 사이즈가 크고 이론을 실험화하기 힘든 폴리머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돕는다.

 크래머 그룹은 폴리머 전해질 물질과 연료전지 촉매에 대한연구에서 생체막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백질과 DNA 등 생물학적 폴리머에 대한 시뮬레이션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그룹은 △합성 매크로분자 화학 구조 분석 △폴리머 이론상의 매크로분자 구조와 역학 관계 △자가 조립 나노구조 등 컴퓨터를 이용한 폴리머 분석에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독일)=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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