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담 전집(전10권) 신동흔 외 11인 옮김 황금가지 펴냄
민담은 구술문학 또는 민속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들 중 산문 서사문학의 테두리에 드는 신화·전설·동화 등을 통털어 일컫는다. 민중 사이에서 창작되고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된 민담에는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민담에는 보통 사람들의 행불행에 관한 소박하고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는 불변하는 인류 보편의 정서를 발견하곤 한다.
세계 30여 민족의 민담을 해당 문화를 잘 이해하는 민족어 전공자들이 선별해 우리말로 옮긴 ‘세계 민담 전집’이 출간됐다. 한국을 비롯, 러시아·몽골·남아프리카·스페인·태국/미얀마·터키·프랑스·이탈리아·폴란드/유고 등 10개 민족 권역의 민담을 담은 10권이 먼저 출간됐으며, 곧 잉카/과라니·인도·이스라엘·중국·미국·일본·독일·에스키모 등의 민담집을 추가해 전 30권이 완간될 예정이다.
검열·각색·축약된 기존 아동용 민담집과 달리 성인 독자들의 수준에 맞도록 가능한 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편집한 본격 성인용 민담 전집으로 해당 언어 전공자들의 깔끔한 번역이 돋보인다.
우리 민담에는 농업을 주업으로 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생산 계층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으며 현세적이고 낙천적인 행복 추구 정신과 안분지족, 관용을 중시하는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 민담’(신동흔 엮음)에는 아기장수 설화와 유사하지만 독특한 세부를 보여주는 ‘우뚜리’ 등 59편을 담았다.
‘러시아 민담’(안상훈 엮음)에는 정교회의 영향 아래에 놓인 북슬라브 민담들이 골라졌다.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동방 정교회를 국교화한 이래 토속 신앙에 기반을 둔 구비문학은 금지당했으나 17세기말 대두된 시민계층의 요구로 교회는 정교의 가르침을 담아 민담을 부활시켰다. 용사(보가트리)가 마귀할멈이나 환상의 미녀, 무시무시한 괴수와 함께 빚어내는 환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부장 사회인 남아프리카 줄루에서 민담은 경직된 사회질서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위계질서에 갇혀 활동을 제약받은 여자와 아이들이 민담의 주인공이 돼 모험과 활약을 펼치며 전사나 추장부인으로 금의환향한다. 민족 기원신화인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민족 대이동을 암시하는 ‘조상신과 은쿨룬클루’ 등이 ‘남아프리카 민담’(장용규 엮음)에서 소개된다.
‘태국·미얀마 민담’(김영애·최재현 엮음)은 힌두신이나 불교의 이야기에 민간신앙·영웅담 등을 녹인 인도차이나 민담을 담았다. 주인공들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신들이 ‘와자싯’이라는 초월적 힘으로 도와준다. 신이 황금파리로 변해 누가 진짜 공주인지 일러주는 ‘낭 마노라’, 연인을 맺어주려 금·은다리를 놓아주는 ‘우타이테 위’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유목민의 후예인 터키의 민담 22편을 담은 ‘터키 민담’(이난아 엮음)에는 정형적인 선악대립의 틀에 거인·요정 등 환상적 요소, 남성적 용맹과 기백을 숭상하는 요소 등이 섞여서 나타난다. 마흔개의 문과 마흔째 아들, 40일의 금기를 지키지 못해 납치되는 아이 등 생활 곳곳에서 40이라는 숫자를 특별히 여기는 모습도 흥미롭다.
원시신앙과 고유의 풍습을 보여주는 ‘마왕 보루타’와 ‘트바르돕스키’를 비롯해 신의 은총으로 척박한 땅 대신 강한 영혼을 부여받았다는 자긍심을 보여주는 ‘포드할레의 전설’ 등은 폴란드의 대표적 민담이다. 이슬람 교리에 충실할 것을 권고하는 ‘착한 일을 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요술담 ‘황금 사과와 공작 아홉 마리’ 등은 유고슬라비아의 민담을 대표한다. 이것들은 ‘폴란드·유고 민담’(오경근·김지향 엮음)에 실렸다.
이 밖에도 전집을 통해 77편의 이야기를 통해 몽골인들의 정서를 생생히 전해주는 ‘몽골 민담’(유원수 엮음)을 비롯, 스페인 사람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스페인 민담’(나송주 엮음), 하층 계급의 유머와 독설이 한데 어우러진 ‘프랑스 민담’(김덕희 엮음), 지역별로 고루 고른 36편의 민담을 담은 ‘이탈리아 민담’(이기철 엮음) 등도 만나볼 수 있다.각 권 1만∼1만2000원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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