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통부의 비공개주의

 얼마 전 기자는 정통부가 600억원을 들여 초중등 학교의 노후 PC 5만대를 교체키로 했다는 내용을 담당과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보도자료로 배포한 내용을 왜 또 전화해 묻느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온 것이다. 나랏돈을 들이는 사업인 만큼 결정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게 의무아니냐고 물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새 정부가 언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충돌이 생겼지만 서로 기본적인 의무와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돼선 안된다. 국민의 세금을 성실히 집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 정부로선 가능한 한 성실히 설명하고 정당한 견제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 점에서 정통부가 그간 보여준 것은 다소 실망스럽다. 정통부는 지난 6월 중앙부처중 처음으로 기자실을 개방하면서 멀쩡한 시설을 뜯어내 빈축을 샀고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해 과잉행동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아예 막기 위해 출입카드가 있어야만 드나들 수 있는 유리문을 출입구마다 설치했다. 보안유지와 전자카드 시범사업 활성화라는 게 공식적인 이유이나 그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뒤늦게 밝혀진 번호정책 관련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이러한 정통부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다. KISDI와 한 리서치 회사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문항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번호이동성이 도입되면 요금이 싸지고 통화품질도 좋아집니다. ‘010’ 통합을 일시에 하면 사회적 경제적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습니다” 등 응답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표현이 질문에 포함됐다. 반대 설명이라도 있으면 이해하겠으나 이마저 없다. 이를 본 한 리서치 전문가는 “거의 텔레마케팅 원고 수준이다”라며 혀를 찼다.

 정통부 정책결정과정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책 자체엔 공감해도 정책 결정과정은 의문투성이다. 정책 중엔 반드시 ‘비공개’로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비공개’가 ‘실책을 가리는’ 수단으로 쓰여선 곤란하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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