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

 해골이 그려져 있고 사람 뼈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깃발을 본 적이 있는가. 해적의 상징기호는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드러난 것이며 죽음을 암시한다. 옛날 사람들에게 해적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 살인하고 보물을 강탈하는 무법자들이었다. 어떤 국가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었으며 바다를 무대로 신출귀몰하며 기존체제를 교란하였다.

 해적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도 있었다. 로마의 사학자 폴리비우스가 해적(pirate)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을 때가 기원전 140년이었다. 각 국가의 해양경계선이 뚜렷하고 해군이나 해병대가 철통같이 바다를 지키는 지금도 있다. 오늘날의 국제법에도 사적 목적을 위해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며 항해를 위험하게 하는 집단을 해적이라고 칭하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는 새롭게 창조된 해적들의 이야기다. 보물과 약탈, 납치 등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해적들의 이야기는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 이후 수많은 소설, 만화, 영화 속에서 반복되었다. 해적들은 황금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대리배설한다.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통해 해적들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애꾸눈이거나, 한쪽팔이 갈고리로 되어 있고 혹은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먹혀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러나 조니 뎁이 연기한 ‘캐리비안의 해적’ 속의 캡틴 잭 스패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눈에 힘주고 걸걸한 목소리로 호령하지 않는다. 악한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으른 사기꾼이지만 오히려 낭만적이며 정의롭기까지 하다. 또 유머 넘치고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조니 뎁이 창조한 새로운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 마치 요네하라 히데유키의 만화 ‘풀 어헤드 코코’에 등장하는 유쾌한 해적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 영화는 전체가 픽션이지만 해적들의 황금기인 17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때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유럽 대륙과 해상교역이 빈번해지면서 이름 없는 수많은 섬들로 둘러 쌓인 카리브해 지역을 무대로 해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 등장하는 갈등 요소는 크게 해적과 영국 해군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각각의 집단 내에도 갈등이 겹쳐지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해적 내의 갈등은 해적선 블랙펄의 선장이었던 잭 스패로(조니 뎁 분)와 그를 몰아내고 현재 두목이 된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분) 사이에 있고, 영국 해군 내의 갈등은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카이라 나이틀리 분)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청혼한 제독과 그녀를 사랑하는 평민 신분의 대장장이 윌 터너(올란도 블룸 분) 사이에서 발생한다.

 해적 내의 갈등은 잃어버린 해적선을 되찾으려는 세력다툼이고,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사랑 때문이다. 물론 외형적 내러티브는 전자에 의존해서 펼쳐지지만 내면적으로 관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후자이다. 이야기는 이런 블록버스터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권선징악, 악은 멸망하고 선이 승리한다. 사랑도 역시 권력자보다는 도전하는 평민이 쟁취한다. 진정한 사랑이 승리하는 것으로 항상 결론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은 보물을 훔친 뒤 저주를 받고 죽지 못하는 해적들이 달빛을 받으면 해골로 변하는 모습이다. 그런 장면만으로도 블록버스터의 쾌감을 충분히 안겨준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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