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한비자

 ◇한비자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현암사 펴냄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눈만 뜨면 피의 각축을 벌이던 중국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의 군주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뛰어난 정치 이론과 역량을 겸비한 인재를 갈구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제자 백가’다. 대부분 지나친 이상주의를 표방했지만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정치사상을 개진한 사상가 집단도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재’란 뜻으로 ‘법술지사’라 했는데 훗날 법가라 일컫게 됐다. 이들은 통치자가 통치력을 완전히 장악하는 유일한 방법이 ‘엄정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상앙·관중·신불해로 계승된 법가사상은 한비에 이르러 집대성된다.

 한비는 전국시대 말기 한나라의 공자로 법치주의를 주창했다. 당시 그의 조국은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해 갖은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껴야 했다. 조국의 위태로움을 바라보다 못해 어리석은 통치를 일삼는 군주에게 법치를 건의했으나 외면당하자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고분편’을 비롯해 여러 편의 글을 썼다. 그의 글과 그 일파의 논저를 엮은 정치 사상서가 바로 ‘한비자’다.

 우연히 한비자를 읽고 크게 감동해 한비를 만나길 소망했던 진나라 시황제는 마침 한나라를 정벌하면서 그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진황제는 그를 견제한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의 계략에 휘말려 그에게 사약을 내린다. 뒤늦게 진황제는 후회했지만 이미 그가 죽은 뒤였다. 훗날 진황제가 한비의 사상을 지침삼아 폭정을 일삼자 한비자는 읽기가 금지된 악서로 낙인 찍히게 된다.

 “인간의 마음을 믿지 말라. 인간이 한 공과만 따져라.”

 한비는 근본적으로 극도의 인간 불신, 왜곡된 사회 인식, 통치자 위주의 사고방식을 품고 있어 그가 피력하는 사상은 늘 과격하고 한쪽으로 치우친다. 따라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2대 만에 멸망한 진나라의 전철을 밝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현실적·실천적 정치이론은 중국 역대 군주가 통치 지침으로 삼을 정도로 고금을 초월한 공감을 얻고 있다.

 ‘공명정대한 법치 리더십의 고전’으로 꼽히는 한비자는 인간 마음의 허점을 비정하리만치 예리하게 찌르는 10만 단어로 직조돼 있다. 2500년 전의 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보적이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풍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철학·역사학·문학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비자는 현대의 정치학·경제학·집단역학·조직심리학 등의 최신 이론과 상보하는 면이 아주 많아 비평적으로 탐독할 값어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번에 현암사에서 개정·증보해 새로 펴낸 ‘한비자’는 우리 고전 번역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김원중 박사(42)가 번역한 것으로 한비 사상의 요체를 담은 주요 부분을 가려 뽑아 읽기 편한 현대어로 매끄럽게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중문학자로서 중국 고전 속 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현대 감각에 맞춘 번역서를 내놓았던 그는 이번에도 일반 독자를 배려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수준으로 번역했다. 원문에 충실하려고 주로 직역했으며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에서는 의역을 곁들였다. 뜻을 명백히 전달해야 할 때는 문맥을 연결할 알맞은 단어를 선택해 제한적으로 삽입했다.

 이 책은 원본에서 한비사상의 요체를 담은 부분을 가려 뽑으면서 좀더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이해하도록 주제에 따라 32편으로 구분했다. 제목을 달고 도입부 설명까지 곁들여 각 편의 제목만 봐도 주제를 쉽게 유추하고 각 편에 담긴 내용을 조망할 수 있게 했다.

 한편 최근 우리사회에도 한비가 주창했던 절대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치를 아쉬워할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를 감시와 적대만 존재하는 냉전장으로 본 한비의 차가움을 시종일관 느끼다 보면 반박의 근거를 찾느라 인간사회의 따뜻한 면에 절로 눈뜨게 된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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