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블랙아웃-화이트아웃

 지난 14일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발전소의 전력마비현상은 Y2K처럼 예견된 사태였음에도 결국 뉴욕 일대를 암흑천지(Black Out)로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사태는 첨단 IT사회의 중요한 축으로서 전력 인프라가 통신 못지않은 중요한 축을 맡고 있음을 인식시켜 주었다. 주목할 것은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기술적 결함과 함께 정책적 실패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력민영화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새삼 우리의 전력민영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거대공룡기업으로 지칭되는 한국전력은 공기업경영혁신 대상 1호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지난 2000년을 전후로 해 한창 들끓었던 한전 민영화는 어찌 된 셈인지 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산자부는 한전 관계자들과 함께 미국 전력 민영화의 참모습을 보고 배우기 위해 현장까지 다녀왔다. 또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한 각종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산자부 중심의 인력들이 이를 떠맡고 나섰으나 왠지 시간이 흐를수록 전력 민영화는 잠잠해졌다. 일반인에게 비치는 한전 민영화는 옛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격이 아닌가 싶다.

 투자자들에게 가장 먹기 좋고 보기 좋은 떡으로 보여졌던 전력산업 민영화의 상징 남동공단발전소 매각 불발은 그 단적인 예다. 게다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이 지난 6월 한전 배전부문 민영화를 연기하겠다고까지 밝혔다.

 뉴욕사태 이후 전력회사 민영화의 폐해가 거론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이에 관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반면 한전노조와 한전 관계자들은 이 사태와 관련, 이번 사태의 원인이 전력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의한 것이라며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행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젠 정부가 대답할 차례다. 미국의 경우 민간전력회사는 에린브로코비치라는 영화에 등장한 PG&E사가 환경을 오염시켰던 전례 등을 감안, 아무 곳에서나 회사를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번 뉴욕정전사태의 배경에는 발전과 송배전이 분리된 미국의 전력 분배구조, 생산 이익을 내세워 연료지대인 탄광 근처에 발전소를 세우면서 송배전비용을 높인 회사의 경영방식도 한몫했다. 또 환경오염을 내세워 대도시 근처에 발전소를 세울 수 없도록 여론을 몰아간 민간단체의 운동 등도 작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민영화 이후의 각종 부작용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대책을 준비하지 않고는 전력 민영화의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무사안일 타파와 경영개혁을 내건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이번 사태로 멈춰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

 이번 미국과 캐나다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전력과 관련 인프라에 관한 한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블랙아웃같은 무사안일·옥상옥같은 업무절차를 가진 공룡 전력기업을 개혁하겠다는 정부의 묘안이 민영화조치였다. 그렇다면 이 즈음에서 정부는 뉴욕사태를 거울삼아 보다 합리적인 전력산업 민영화조치를 수행할 의지와 방향을 보여주어야 한다.

 뉴욕의 블랙아웃 사태를 통해 우리는 어둠속에서 벗어났을 때 발생하는 방향감 상실, 시력장애 등 이른바 화이트아웃(White-out)에 대한 경고를 받은 셈이 아닌가.

<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