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과학기술 입국’을 외치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으나 현실은 다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공계 대학 지망생 급감과 고시·의사 선호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조차도 과학기술계의 근시안적 연구 추진 체계에 대한 불만과 직업으로서의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자식의 이공계 전공 선택을 기피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물론 정부가 이공계 진학을 장려하기 위해 장학금을 대폭 확충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생각만큼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최근들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경기불황과 국내경기 위축 등으로 IMF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등 기술선진국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과학기술분야에 대해 경제논리를 뛰어넘는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70년대의 과학기술 우대정책이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듯이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원동력을 과학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10대 신성장동력산업을 선정하고 이 부문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은 두손을 들어 환영할 일이다. 신성장동력산업의 선정은 우리나라의 경제 재도약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정부 핵심정책이며, 국가신성장에 기여할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며 이는 적절한 결정이다. 과학기술은 끝없이 금은보화를 만들어내는 도깨비방망이도 아니며 모든 연구가 100% 성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및 과학기술 측면에서 비교할 때 미국은 분명히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되는 기술선진국이다. 이러한 나라의 정부관리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술에 수십년 동안 투자를 한다는 것은 경제논리로만 볼 때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힘이다.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삼성 등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발표한 미래 신기술 목록에 단골로 들어가는 분야중에 양자암호(quantum cryptography)라는 것이 있다. 이 양자암호는 이론이 나온 지 무려 20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10년 이상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미래에 대비해 당장 아무런 돈이 되지 않는 이 분야에 계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이익과 신산업 창출만을 잣대로 하는 중요 과학기술과제 선정 논리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추진방법은 분명히 재고돼야 한다. 화분으로 키우는 벤자민 나무의 생육 상태를 좋게 하려면 영양제 주사를 놓거나 상한 가지를 쳐내기도 하지만 주기적인 물주기와 분갈이 그리고 햇볕 쬐기가 더 중요하다. 즉 IT 융합형 감성 전달기술, 정보통신 인프라 기술, 전파기술, 정보보호기술 및 표준화 기술 등과 같은 기반기술에 대한 진흥정책이 없는 선택과 집중은 기초체력은 등한히 하고 특정 근육만을 단련하는 건강증진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
미래기술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정부가 출범 초기 또는 경제가 어려울 때 내세울 수 있는 유혹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따라 연구환경의 큰틀마저도 매번 바뀐다면 기술개발의 연속성과 성공 가능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또한 기술개발에 대한 정책 입안의 중요성 이상으로 과학기술 종사자에 대한 배려와 사기진작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경제논리나 정치논리가 아닌 미래 국가발전 비전에 따라 모험과 도전정신을 갖고 과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환경 구축과 과학기술 종사자의 대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경제가 살아야 국민생활이 윤택해지지만 사회 저변의 전반적인 안정화를 추구하지 않는 정책적인 편협으로 국가발전이 저해돼서는 안된다. 지금이야말로 말보다는 실천, 선언보다는 구체적인 계획, 뛰어난 소수 중심의 리더십보다는 다수의 건전한 공동체 정신이 국가신성장을 위해 필요한 지혜라고 하겠다.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공학박사 swsohn@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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