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강국 장비·재료산업에 달렸다](4)`숲`을 보고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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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

 국내 장비·재료업체 CEO들은 가끔 이같은 하소연을 토로한다. 산업육성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나 소자업체가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이나 상품에만 관심을 쏟을 뿐 기초산업의 체질강화에는 너무 무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세한 국내 장비·재료산업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와 소자업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장비·재료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각국의 정부와 수십개의 소자업체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또 장비·재료업체들은 이에 걸맞은 R&D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핵심인 차세대 노광장비 개발분야만 보더라도 미국은 정부는 물론 인텔, AMD, 모토로라, 마이크론 등 업계와 로렌스버클리, 로렌스리버모어, 센디아 등 국립연구소가 연대해 ‘EUV LLC’라는 프로젝트를 추진, 97년 이후 지금까지 총 2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유럽은 유럽연합(EU) 지원 하에 이온 노광장비 개발 프로젝트인 ‘IPL’을 진행중이다.

 이밖에도 미국이 10여년 전 장비개발과 신뢰성평가를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세마텍(SEMATEC)을 설립해 장비산업에서 앞서 있던 일본을 추월한 점이나 이에 자극받은 일본이 90년대 중반 셀리트(SELETE)를 설립해 적극 활용하면서 최근 고지 재탈환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양산라인의 경우 국산화율이 20%를 넘지 못한다. 더구나 최근 구축된 300㎜ 웨이퍼 전용 12라인의 경우 1조4000억원의 천문학적인 설비투자비가 투입됐지만 90% 이상이 외국 장비업체 몫으로 돌아갔다.

 정부의 산업육성책도 메모리·LCD 등 소자산업에 맞춰지기 일쑤다. 따지고 보면 현재 정부의 정책 가운데 장비·소재업체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프로젝트는 ‘시스템IC 2010’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차세대 소자개발의 그늘에 가려진 장비나 재료가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95년부터 5년간 진행된 ‘반도체장비국산화개발사업’은 국내 장비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장비 연구개발비용의 40%가 수요자인 소자업체가, 또 40%는 정부가 지원한 이 프로젝트로 미래산업·주성엔지니어링·한국디엔에스, 케이씨텍, 아토 등 10여개 장비업체가 핵심장비를 국산화하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

 지금은 대를 이를 만한 대형 프로젝트가 없다. 때문에 장비·재료업계에 새로운 스타탄생의 기회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애써 키워놓은 스타기업마저 취약한 내수환경으로 자연도태될 위기에 처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자나 패널분야에서 선두를 유지하려면 경쟁업체보다 보다 빠른 투자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며 “속도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검증된 외국의 우수한 장비와 재료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전문가들은 소자업체와 정부에 당장 쓸 목재찾기에 급급하기보다는 5년, 10년 후에 무성해질 수 있는 숲을 만드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세계반도체재료협회(SEMI)의 이사로 활동하는 김중조 성원에드워드 사장은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같은 세계 1위 메모리·LCD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한 장비 및 재료 국산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정부, 소자업계, 장비·재료업계, 학계가 힘을 모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마련된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