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당정협의까지 거쳐 내놓은 새로운 통신경쟁정책을 보면 우리나라 통신시장이 얼마나 복잡미묘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통신서비스정책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보여온 것도 일견 이해할 만하다. 나아가 이번에 발표한 통신정책은 후발통신사업자들의 법정관리나 경영애로 등에 대해 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것 이상의 내용을 담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정통부가 지난 3개월간 분석했다는 통신시장 경쟁 상황을 요약하면 후발통신사업자들의 경영악화와 새로운 유무선통신시장에서 선발사업자들의 시장지배력 강화 우려로 모아진다. 유선통신시장에서는 두루넷·온세통신·하나로통신 등 후발통신사업자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지배적 사업자인 KT의 독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무선통신시장의 경우는 선발사업자(SK텔레콤)로의 쏠림이 더욱 가속화됨으로써 시장경쟁 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번호이동성을 조기에 도입하고 가입자 선로 개방, 초고속인터넷에 대한 기간통신역무 지정, 전파사용료 차등화 등의 유효경쟁정책을 실시하겠다는게 당정합의 내용이다. 특히 유선통신 쪽에 중점을 두고 있어 KT를 긴장케 하고 있으나 가장 민감한 사안인 LM(유선에서 무선으로 거는 통화)시장 개방은 뒤로 미뤄 후발사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못했다. 무선통신 분야에서는 전파사용료를 차등화해 선발사업자의 주파수 우위 요인을 억제할 것임을 강조했다. 또 이동전화시장의 시장지배력이 무선인터넷으로 옮아갈 것에 대비해 무선인터넷 개방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서비스시장에 대한 정부의 이런 분석과 처방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통신전문가들과 언론이 계속 지적해온 것들로 본질적인 대책을 제시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이는 또 통신서비스시장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데다 사업자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어 명쾌한 처방을 내놓기 힘들다는 현실에 비춰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통신서비스정책에 관한 한 유효경쟁 환경 조성이나 이를 위한 비대칭규제 등은 그 자체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국민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편익을 증대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또한 효율적인 경쟁환경을 조성해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고 정보화를 촉진하는 발판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통신정책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내놓은 통신정책의 방향이 설비 기반의 경쟁에서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는 서비스 기반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으나 소비자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요금 같은 편익증대와는 거리감이 있다. 중복투자 방지를 위한 설비 개방도 후발통신사업자들의 공동활용 등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투자 위축에 따른 통신시장의 정체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정책의 차등화 등은 이미 정해놓은 법의 원칙에 묶여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정부는 앞으로 통신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심도있게 고민할 것을 주문한다.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새로운 통신서비스는 물론 유무선 통합, 방송통신의 융합 등 차세대 시장 환경에 대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정체돼 있는 시장에 연연하면서 찬반 논란만 불러일으키기보다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소화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등의 정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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