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는 출력방식에 따라 가정용과 사무용으로 사실상 구분돼 왔다. 잉크를 이용해 출력하는 프린터는 가정용, 레이저를 사용하는 프린터는 사무용이란 등식이 프린터 시장에 굳어 있었다. 레이저 프린터는 몇십만원 상당의 고가여서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러웠으며 업무상 빠른 출력이 필요한 사무실에서 속도가 느린 잉크젯 프린터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시장구분은 이제 무의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각 업체들이 기술개발 및 제품혁신을 통해 시장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정용으로 치부되던 잉크젯 프린터는 최근 속도를 대폭 향상시켜 사무용 시장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사무용 시장에 한정됐던 레이저 프린터도 가격인하를 무기로 가정 침투에 나섰다. 잉크젯 프린터는 레이저 프린터를, 레이저 프린터는 반대로 잉크젯 프린터를 쫓는, 프린터 시장에는 먹이사슬이 형성되고 있다.
◇사무용 시장을 노리는 잉크젯 프린터=한국HP가 프린터 업계 중 유일하게 잉크젯 프린터를 무기로 사무용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HP는 향후 2∼3년 내에 “사무용 프린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제품”으로 확신하고 있다. 한국HP의 전략에 따르면 오는 2005년에는 이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 매출이 3배까지 늘어나 사무용 프린터 시장의 주류를 이룰 제품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HP는 이를 통해 현재 흑백 문서를 주로 쓰고 있는 국내 사무환경에 컬러 바람을 일으킨다는 계획이며 이와 동시에 앞서가는 프린터 업체임을 분명히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주 목표는 현재 사무실에서 주로 쓰고 있는 흑백 레이저 프린터를 이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38만대의 흑백 레이저 프린터 시장을 잠식한다는 계획이다.
한국HP가 확신에 찰 수 있도록 만든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는 무엇일까. 집약한다면 레이저 프린터에 뒤지지 않는 잉크젯 프린터다. 잉크젯 프린터가 사무용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저렴한 하드웨어 가격에 고품질의 컬러 문서를 출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무실에서 사진 뽑을 일은 거의 없으며 초기 구입비용은 저렴하지만 장시간 사용할 때 들어가는 유지비가 비싸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출력속도가 느리면 그만큼 비즈니스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꼴이 됐던 것이다. 한국HP의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는 바로 이같은 단점을 해결한 잉크젯 프린터다.
한국HP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 중 3000이란 모델은 컬러 레이저 프린터보다 장당 출력비용이 20∼50원 가량 저렴하다. 별 차이 안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월 1만대 정도를 출력한다면 비용절감 효과는 그리 작지 않다. 또한 흑백 레이저 프린터와 비교해도 출력비 차이(장당 0.4원)가 거의 없는 것도 예전 잉크젯 프린터와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때문에 흑백 레이저 프린터와 동등한 유지비용을 제공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컬러 문서를 레이저 프린터와 같은 빠른 속도로 출력한다는 점을 앞세워 기업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비즈니스 잉크젯 프린터는 본체 가격도 레이저 프린터 수준인 30만∼100만원대에 책정돼 레이저 프린터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가정용 시장을 노리는 레이저 프린터=최근 레이저 프린터 가격은 폭락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50만원대에 달했던 레이저 프린터가 최근에는 20만원 초반이면 구입할 수 있다. 브랜드도 지난해 한 회사 제품에서 최근에는 3∼4개 정도로 늘어나 여러 회사 제품을 비교하면서 용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한 대학생은 “잉크젯 프린터만큼 저렴해졌다”며 “컬러는 이미 갖고 있는 잉크젯으로 뽑고 흑백 문서는 레이저로 출력하고 싶을 정도”라고 전한다.
삼성전자, 신도리코, 엡손코리아 등은 출력속도가 빠른 레이저 프린터를 저렴한 가격에 출시하고 있다. 이들 회사 제품은 분당 16∼20장까지 문서를 뽑아낸다. 이는 컬러 문서를 출력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잉크젯 프린터가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출력성능을 지원하고 있다.
레이저 프린터 업체들이 가격인하를 무기로 관심을 쏟고 있는 수요는 잉크젯을 주로 쓰고 있는 가정용 고객. 특히 대학생 중심의 학생층이다. 리포트, 자료출력용으로 흑백 문서를 주로 쓴다는 점 때문에 향후 중요한 잠재수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레이저 프린터 업계의 마케팅은 학생들에게 집중돼 있다. 복사기 업체로 유명한 신도리코는 이례적으로 게임대회를 후원하며 자사 레이저 프린터 브랜드를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만들고 있으며 삼성전자, 엡손코리아 등도 소비자 대상의 프로모션을 집행하거나 레이저 프린터도 이제 구입하는데 부담이 사라졌다는 점을 홍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도 있다=최근 기업용 프린터 시장이 잉크젯 프린터와 흑백 레이저 프린터의 경쟁구도로 돌아가고 있지만 향후 3∼5년 뒤면 이 또한 변화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가 100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저렴해지면서 대중화에 불붙기 시작한다면 흑백 레이저 프린터와 잉크젯 프린터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컬러 레이저 프린터는 100만원 초반대까지 내려왔다. 저가형 흑백 레이저 프린터와는 가격차가 있지만 보통의 흑백 레이저 프린터와 유사한 가격이다. 그만큼 흑백 레이저 프린터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평가다. 향후 사무실에서도 컬러 문서 사용은 필수이기 때문에 컬러 레이저 프린터 시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놀타QMS에서 출시된 컬러 레이저 프린터는 흑백 문서의 출력속도가 분당 16장, 컬러는 5장으로 컬러 속도가 조금은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컬러를 주로 쓰는 디자인회사, 광고회사 등을 제외한 일반 사무환경에서는 적합한 제품일 것으로 보인다.
프린터 시장에서 컬러가 주가 될 것은 당연한 예상이고 사실이다. 사무용 프린터 시장의 90% 이상이 현재는 흑백 레이저 프린터로 구성돼 있지만 기술이 발전되고 가격혁신적인 제품이 탄생한다면 이같은 시장구도도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런 가운데 올 하반기에는 국내 프린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에서도 컬러 레이저 프린터가 개발될 예정이어서 컬러 레이저 프린터의 대중화가 한층 기대되고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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