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나 기업들이 정년을 줄이면서 과학자·엔지니어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북한의 경우에도 과학 및 기술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들을 평생 우대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인 정만영 박사(77). 그는 지난 78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인 한국통신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 부사장 등을 역임한 원로 과학자다. 국산 교환기인 PABX 기술 개발도 주도했고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앞장서 왔다.
고희를 훨씬 넘긴 현재에도 정 박사는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7일부터 9일까지 대한전자공학회가 주관하는 국제 학술대회인 ‘ITC-CSCC 2003’에 논문 발표자로 나선다.
이번 행사의 최고령 논문 발표자인 정 박사는 “LED의 밝기가 크게 개선되면서 전자제품의 표시장치에서 조만간 형광등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논문은 광파이버를 이용해 기존 LED조명의 밝기를 크게 개선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기존방식을 이용해 형광등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6000여개의 백색 LED가 사용돼야 했으나 이를 이용하면 4분의 1 수준인 1500여개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정 박사는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올해 초 자신의 호를 따 ‘우권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특허도 2건을 출원했다. 사무실은 정 박사의 조그만 아파트다. 이 사무실(?)은 LED형광등, LED플래시 등 다양한 개발제품과 각종 실험 기기로 채워져 있다. 그는 “백색 LED는 현재 일본의 니치아가 독점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과학자가 그보다 효율이 높은 LED를 개발했으며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며 자신이 보유한 광파이버 기술과 LED 기술을 합칠 경우 무궁무진한 시장이 기대된다고 강조한다.
한참 제품에 대해 설명하다가 정부 정책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최근들어 정부나 기업의 기술정책이 기술강국에 반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정 박사는 “능력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년만을 따져서 퇴출시키는 현재의 정책으로는 과학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며 “에디슨은 70세 넘어서도 왕성한 발명활동을 했으며 과학자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고 밝혔다. 국내 전자산업에 큰 기여를 해온 한 원로 과학자가 변변한 연구실 없이 자신의 집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것이 국내 전자산업의 한 단면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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