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편지](24)아주 오래된 만남

 지난 줄거리

에이지는 드디어 에리카와 만난다. 아키라가 JTT옥상에서 히비야공원을 보고 투신자살했다는 말을 들은 에리카는 그가 최후에 자신을 생각하며 목숨을 버렸다는 것을 직감한다.

1999년 6월 17일

보스턴

 에이지를 내려 놓은 에리카는 코너를 돌자마자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멈춘다. 너무나 처절한 아키라와의 이별. 그리고 너무나 쓸쓸한 에이지와의 이별. 나는 어떠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가? 왜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허망하게 죽거나 사라져야 하는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티고네의 운명이 아닌가? 모친과 결혼한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누이인 안티고네… 살해당한 오빠를 매장한 죄로 생매장된 안티고네… 먼 이국땅 보스턴의 거리에서 에리카는 눈물을 쏟는다.

 남편 스티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에리카는 다시 차를 발진하여 벨몬트로 향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롱펠로 브리지를 건넌다.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를 기리는 롱펠로 브리지를 건너며 그의 시 회상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가끔 나는 자석처럼 내 마음이 끌렸던 사람들을 회상한다.

내 곁에 더 이상 없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추억은 상념과 아픔들에 뒤덮여 있네

마치 무덤의 묘비석이 이끼와 태에 뒤덮여

이름만이 겨우 보이듯이

 묘비석의 이름처럼 희미해져 버린 후지사와 가문의 사람들. 남편 아키라, 시아버지 데쓰로, 시어머니 사다코… 한국계로서 일본이라는 땅에서 고뇌하고 투쟁하던 사람들… 인간에게 국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모친의 자궁 속에서 나라를 선택하여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국적이라는 것이 인간을 속박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 에리카는 이런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아키라를 사랑하고 그의 부모들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아키라와의 결혼은 파경이었다.

 이 파경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시어머니 사다코의 변모였다. 그림처럼 아름답고 품위가 있던 사다코가 담배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더니 때로는 정신분열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인 이상한 사람으로 표변한 이유를 에리카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러한 표변을 맞은 에리카는 너무 젊고 미숙한 신혼초기의 여자였다. 시아버지 데쓰로가 조직폭력세계에 가까이 접근했던 것이 원인이었던가? 에리카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유란 그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시어머니 사다코의 타락과 시아버지 데쓰로의 조직폭력단 연루는 에리카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학자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이지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던 에리카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키라는 에리카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따라서 에리카가 미국유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흔쾌히 동의하였던 것이다. 1974년이었으니 결혼한 지 불과 3년이 되는 해였고 에리카가 아직 26세 때의 일이었다. 결혼생활 3년에 아내의 도미유학에 동의할 정도로 아키라는 에리카를 사랑하고 동시에 존중하였다. 그 유학길이 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고 에리카가 다시는 일본에 돌아가지 않게 되는 운명을 만들 것이라고 둘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들은 너무 어렸던 것이다.

 에리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 스티브는 야외 식탁에 이미 저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메뉴는 파스타. 일본에서 가정교육을 받은 에리카에게 이 미국남편의 자상함은 아직도 거북하다. 일본의 남편이란 밤늦게 들어와 메시(밥줘), 후로(목욕), 네루(잘게)라는 세 마디의 명령만 내린다는데….

 “그래 다나카상은 잘 바래다 주었어?” 와인을 따르며 코헨이 묻는다.

 “네.” 간단한 대답 외에 에리카의 말이 따르지 않는다. 저녁을 즐기며 속삭일 기분이 아닌 것이다.

 “그 사람은 언제 알았던 거야?” 에리카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코헨은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는 모양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자세히 말해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 에리카는 평소의 밝은 표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입을 연다.

 “다나카상은 아키라와 도쿄대의 동급생이에요. 전공은 달랐지만 야스다강당 공격사건 때 데모대열에서 알게 되어 그 후로 친하게 지냈지. 그리고 둘 다 JTT에 입사하였으니 오랜 친구이지요….”

 “당신도 다나카상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나?”

 “그렇지요. 같이 데모대열에서 만났고 그 후로 결혼할 때까지 약 일년은 셋이서 붙어 있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러나 결혼 이후론 만난 적이 없어요. JTT에 입사하여 다나카상은 주로 지방에 근무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다나카상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뭐지?” 코헨이 에리카의 일을 놓고 이렇게 길게 질문을 늘어놓을 일은 없었다. ….

 “다나카상은 아키라의 자살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는군요. 물론 JTT 안에서 크게 중용되지 못했던 것도 퇴사의 결심을 쉽게 한 면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정과 의리로 봐 제게 아키라의 죽음을 직접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나카상은 원래 성실하고 충직한 사람이었어요.”

 “아키라상이 왜 그렇게 처참하게 스스로 생을 버렸다고 합디까?”

 “그것을 다나카상도 그렇고 JTT 안의 아무도 모른다는 거예요. 금전문제라거나 여자문제라거나 하는 통속적인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제가 무슨 단서가 되는 것이라도 알고 있지 않나 해서….”

 “그래 당신은 무슨 심증이 가는 것이라도 있소?”

 “글쎄요….” 여기서 에리카는 말이 막힌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마음 아픈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다. “하니, 괴로운 심정은 잘 알겠어. 그러나 돌아가신 아키라상을 위해서라도 우리도 다나카상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당신이 오해할까봐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아키라상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가 당신의 첫사랑이었고 전 남편이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아.”

 55세 된 존경받는 학자이자 중년의 남자인 코헨의 아량과 양식에 에리카는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소리없이 파스타를 씹고 있는 에리카에게 코헨이 불쑥 묻는다.

 “당신 보스턴 일본인협회에서 만난 하버드대학의 제임스 홀버그 교수 생각나?”

 “네. 일본연구를 한다는 분 말이지요.”

 “사실 나는 그 친구 여기저기서 자주 마주치는 편인데 말이야. 그 친구 최근에는 일본통신산업연구에 몰두해 있거든…. 작년 가을인가 하버드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당신의 전남편이었던 후지사와 아키라상에 관해서 잘 아느냐고 묻는 거야. 별로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 후지사와상은 JTT에서 앞으로 주목해야 할 스타 중의 하나라고 하더군. 그러면서 하는 말이 JTT 내부에서는 매우 잔혹할 정도로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며 또한 JTT 안에서 기업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거야….”

 “잔혹하다구요?” 에리카는 놀란다.

 “글쎄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군…. 일본통신산업을 연구한다면 지배적 사업자인 JTT에 관해서 잘 알겠지. 뻔질나게 일본에 가고 갈 때마다 JTT에 가서 고위층과 면담도 한다는 거야.”

 에리카는 여기서 자신이 남편이었던 아키라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자문해본다. 젊은 시절의 사랑, 반대를 무릅쓴 결혼, 각자의 직장생활, 그리고 3년간의 결혼 생활 후의 도미…. 그렇고 보면 자신은 젊은 남자이자 남편이었던 아키라에 관해서는 알지 모르지만 사회인이자 직장인으로서의 아키라에 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키라는 집에서 회사 일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않는 습성이 있었다. 이는 아마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성격이리라…. 그리고 자신이 도미한 74년부터 99년까지 25년간의 긴 세월에 아키라가 직장에서 어떠한 인간형이 되었을지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아까 아키라가 JTT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안다고 그랬어요?”

 “그래요. 홀버그 교수에 의하면 아키라상이 JTT의 코퍼릿 어페어스(corporate affairs), 즉 민영화와 관련된 구조조정, 주식회사전환, 금융 오퍼레이션 등 가장 중요하고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에서 늘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그것이 아키라의 자살과 관련이 있다는 추론을 제게 말하시는 건가요?”

 “뭐,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돈이라거나 여자라거나 하는 통속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아키라상의 충격적인 자살의 원인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까?” 역시 유태인은 사물의 본질에 가정이나 편견이 없이 파고들고 매우 논리적이다.

 

sjroh@alum.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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