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이야기](9)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재

 중국에 처음 간 것이 1998년이다. 그해 베이징에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처음 시작됐고, 우리 협회에서는 공동 부스를 만들어 참가했다. 당시 중국의 애니메이션산업은 그렇게 활성화돼 있지 않았으며 행사도 우리의 SICAF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진행됐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자 일반 시민들의 참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중국인들의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 행사장에서 중국동화협회(중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을 ‘動’이라고 함) 임원을 만났다. 그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상황에 큰 관심을 표방했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서 매년 2개 이상의 장편이 상영된다는 데에 매우 놀라워했다. 이에 대해 그는 사실 확인을 여러번 하는 등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실이 확인되자 그는 표정이 변하며 중국의 애니메이션산업 현실에 대해 진솔한 말을 했다. 한마디로 무척 어렵다는 얘기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수십년 동안 한편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보령등’이라는 작품을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있는데 매우 기대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질 무렵에 그는 내게 의미있는 말을 했다. “중국의 애니메이션산업은 지금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이 행사를 전기로 해서 중국의 애니메이션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아마 중국과 한국은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와 헤어진 후 2001년에 중국의 상하이 애니메이션 필름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우리 협회와 상하이 스튜디오와의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서였다. 당시 상하이 스튜디오의 대표는 “중국 정부는 2001년 1만3000분의 창작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시작으로 매년 30%씩 증가해 2005년에는 4만8000분의 방송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것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정말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었다. 당시 상하이 스튜디오의 임원들도 그 물량을 제작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걱정하면서도 매우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후 상하이 스튜디오가 중심이 되어 중국의 동화협회를 전국적으로 재편하고, WTO 가입에 따른 시장개방과 관련해 전국의 캐릭터 유통망 등을 체계화하는 등 작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불과 3∼4년만에 중국은 놀랄 정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핵심적인 발전요인을 제작지원으로 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의 경우 방송용 애니메이션 쿼터제를 업계에서 제기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국회 상임위 보류상태다. 언제 입법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러다간 일본과 중국의 제작물량에 치여 아시아에서도 뒤로 물러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육성 지원정책도 좋다.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제작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작품들간의 경쟁도 있고 그 과정에서 우수한 작품도 나오는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중국은 우리를 지켜봤다(참고로 ‘보령등’은 중국에서 유료관객 1200만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됐다.

 

<이교정·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전무 lke@koreaanimation.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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