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천재론

◆국제부·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빌 게이츠를 모델로 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천재론’이 세간에 화제다. 한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그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빌 게이츠 같은 천재에 달려 있다”며 천재 경영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빌 게이츠를 예로 들며 천재에 대해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발상이 자유롭고 생각이 기발해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껏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표본으로 내세운 빌 게이츠가 과연 천재일까. 그의 마니아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게이츠 비판론자들은 게이츠보다는 애플의 창설자인 스티브 잡스가 천재라고 주장한다. 게이츠에 대해선 혹독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게이츠가 유일하게 개발했다는 프로그래밍 작품이 사실은 변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MS의 발전에 전기를 가져다준 IBM의 MS-DOS 채택도 ‘도마’에 오른다. 게리 킬달이 개발한 CP/M을 구입한 후 이를 업그레이드하고 IBM과의 계약을 성사시켜 오늘의 MS를 있게 했다는 것이다. 윈도도 애플의 모방작일 뿐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20세기 최대 발명품인 인터넷 활용에 있어서도 선·오라클 등 경쟁사보다 늦었음을 지적받기도 한다.

 게이츠 비판자들 눈에는 결코 게이츠가 ‘천재’가 아니다. 단지 게이츠가 ‘마케팅의 천재’라는 것에는 수긍한다. 이 회장이 게이츠의 이같은 면을 감안해 ‘게이츠 같은 천재 육성’을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뛰어난 한 사람이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쉽게도 우리의 사회 인프라는 천재를 발굴, 육성하는 데 너무나 절망적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겠다며 야심만만하게 상아탑을 두드렸던 수많은 우리의 인재들은 이미 대학과 직장을 거치면서 제몸 건사에도 바쁜 ‘범부’로 전락하고 있다.

 광야에서 초인을 갈망한 어느 시인의 그 심정처럼 정말 우리를 먹여 살릴 천재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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