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자신의 저서 ‘황금의 가지’ 첫머리에서 한 남자에 대해 적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탐하는 찬탈자들을 경계하느라 숲속의 왕권을 상징하는 나무 앞에서 늘상 긴장하며 충혈된 눈으로 칼날을 세우고 있다. 다름아닌 왕이다.
이 비유는 권력찬탈과 관련한 고대 이래의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한 비유로 등장한다.
신화시대의 얘기만이 아니다. 요즘 국내로 시간과 장소를 옮기면 국회의원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며 국회에 밥그릇을 보낸다는 기사가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속된 말로 과기부·산자부·정통부간 ‘밥그릇 싸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엊그제 정부의 IT관련 부서인 과기부·산자부·정통부 관계자들이 차세대 성장엔진 프로젝트에 대한 역할분담 조정회의를 가졌으나 합의도출에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로봇·디지털TV·디스플레이 등 향후 국가적 핵심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 3∼4가지 아이템 때문에 상호합의가 어려웠다고 한다.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가능성 여부가 IT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엔진 확보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경제상황이 안좋고 갈길이 먼 가운데 일어난 이러한 정부부처간 알력은 국민이 보기에 너무나 무책임해 보인다.
내수경기 위축 분위기속에 남북문제다 줄파업이다 해서 각자의 위기감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 경제상황을 IMF 상황과 비슷하게 인식하는 마당이다.
국내에 투자한 일본기업들의 한국 영업전망은 아시아에서 꼴찌로 나왔다. 일본에서 조사한 외국기업들의 대 한국 투자 인식역시 중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IT엔진이라는 실리콘밸리 경제가 늪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세계 경기마저 이라크전이 끝났음에도 추락일로에 있다. 미 연방준비위원회는 미국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인하까지 단행할 정도다.
지금의 상황은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이 ‘사업영역에 근본적 변화가 오는 시점’으로 정의한 ‘전략적 변곡점’이란 바로 그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풍향이 바뀌는 점이 그 시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배의 진로를 바꿔야 할 때 평소 풍향을 면밀히 확인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위기를 맞아) 배를 돌리는 것이 그지없이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84년 펜티엄칩 오류 문제로 6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보며 이런 생각을 정리했던 그는 “이 전략적 변곡점이란 녀석은 스스로가 교활하게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변화되었다고 꼭 집어낼 수는 없고 다만 무엇인가가 변화되었구나라는 정도만 인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IT관련 정책부처도 이러한 분위기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기득권 조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략적 변곡점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들이 차세대 성장엔진을 어떻게 나눠야 좋을지 몰라서 합의도출에 실패했을까.
정책 당국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면 이러한 상황을 조기에 종결해야 한다. 최적의 해결책은 대통령이 조율하기 전에 이미 각 부처 관계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앤디 그로브 회장에게로 돌아가보자.
“여러분은 전략적 변곡점의 제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 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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