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독자성 유지 필요하다.”
“효율성 위한 시장통합이 대세다.”
정부가 지난 5월 16일 증시통합안을 발표한 이후 코스닥시장의 존립여부와 위상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증시통합이 이뤄질 경우 코스닥은 거래소시장의 하위시장으로 전락, 사실상 신기술주시장의 위치를 잃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정부는 시장을 통합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각 유관단체에서 인원을 뽑아 시장통합을 위한 법제 마련과 합의안 도출에 힘을 쏟고 있다.
논란의 큰 줄기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정보기술(IT)과 벤처기업의 육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코스닥시장의 독자적 운영이 필수라는 주장과, 증권시장의 효율성을 위한 시장통폐합이 대세라는 견해의 충돌이다.
일단 벤처기업과 코스닥증권시장, 등록법인협의회, 한국증권업협회 등 코스닥 관련 유관기관 등은 코스닥시장의 독자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또 시장통합안 발표 후에도 각계 각층에서 시장통합이 코스닥의 순기능과 특성을 잃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코스닥증권시장은 나스닥에 이어 세계 2위의 기술주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등록기업수는 이미 거래소 상장기업수를 앞지른 상태다. 잦은 벤처 비리와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가 있었지만 많은 순기능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거래소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많은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많은 기업인들이 코스닥시장 등록을 목표로 움직이는 등 코스닥이 주는 상징성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산업의 성장엔진이라 할 수 있는 벤처·IT의 젖줄 역할이 사라질 경우 국내 산업의 동반 위축까지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시장통합이 시장원리에 따르지 않고 인위적 병합 분위기라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에서도 증권시장 통합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시장 자체의 수익이 없거나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난 경우다. 따라서 코스닥이 독자적 시장 역할을 무리없이 진행하는 가운데 나온 통합안은 설득력이 낮다는 설명이다.
시장통합시 기업이나 투자자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거래소와 코스닥 양대 시장이 서로 경쟁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은 시장통합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안에 찬성하는 측은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단일시장체제에서는 관리나 투자자 보호에 더 편리하며 중복투자된 부분을 제거하면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기관별 이해가 엇갈리고 있고 충격이 있더라도 이는 일시적 ‘성장통’이며 국가 경쟁력 제고와 건전한 투자문화 정착을 위해서도 시장통합은 대세라는 것이 정부와 통합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엔씨소프트·강원랜드·SBS 등 코스닥 대표주들의 거래소 이전을 비롯, 코스닥증권시장의 적자(2002년) 등과 맞물려 증시통합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 코스닥 등록기업 가운데 증권사의 분석대상에 올라 있는 기업은 총 100개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또 외국인이나 기관이 관심을 갖는 종목들이 극히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코스닥에서는 적정한 기업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건전한 투자 분위기보다는 투기의 장이 되고 있으며 투자자 보호가 어렵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일단 계속되는 논란속에도 정부의 증권·선물시장 통합안은 확고한 의지속에 추진중이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 증권업협회 등 유관기관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확정안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벤처기업협회·벤처캐피털협의회 등이 코스닥의 독자성 유지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또 코스닥위원회와 코스닥증권시장은 코스닥 등록기업 인수합병(M&A) 방안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공청회를 준비하는 등 시장통합과는 무관하게 코스닥시장의 독자적인 위상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정부의 증시통합안에 대한 후속조치를 위해 유관기관에서 파견된 전문가들로 구성한 증시통합대책반을 운영하고 있다. 대책반은 유관기관별 입장을 정리하고 빠른 통합안 도출에 목적을 두고 있다. 코스닥의 위상 또는 독자생존 여부는 이 통합안에서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시장의 독자성>
별도의 시장으로 존재하지 못하더라도 코스닥이라는 독자성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하지만 별도의 기구가 아니라 하나의 시장 안에 거래소부·코스닥부로 나뉘면서 코스닥이 제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증시통합안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코스닥이 현재처럼 별도의 기구로 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부의 통합의지가 확고한데다 이미 통합안 마련을 위한 통합대책반에도 코스닥 관련기관 관계자들이 참가하고 있어 사실상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현실적인 대안은 증시통합 이후 코스닥부가 자기 역할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신호주 코스닥증권 사장은 “증시통합을 수용하고 증시통합 자체보다는 코스닥의 브랜드를 유지하고 독자성을 확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스닥위원회와 코스닥증권시장은 증시통합 논의와는 별개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사항들을 보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업 M&A 활성화와 퇴출제도 강화 등 시장관리제도 개선방안 등의 마련이 그것이다. 이 개선방안에서는 코스닥시장의 독자적인 위상 강화와 시장신뢰 회복 등의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 통합 후에 코스닥의 독자성과 시장기능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증시통합대책반은 시장통합 후 새 법인의 조직을 거래소부·코스닥부·선물부 등 크게 3개 사업부를 갖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밖에 청산·결재와 전산기능은 각 사업부 안에서 역할을 하며 시장감시와 관리기능은 별도의 부서로 운영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증시 개편안 추진일지>
2003년 3월 - 금발심 증권분과위 ①단일거래소 통합 ②지주회사 방식 통합 ③개별거래소 체제 유지 등 세가지 방안 제시.
2003년 3월 - 정부, 지주회사제 방식의 시장개편방안 제안.
2003년 3월 - 정부, 이해당사자간 협의 통한 대안이 제시될 경우 긍적적 검토 의사 밝히고 유관기관협의회 구성.
2003년 5월 16일 - 정부, 거래소·코스닥증권시장·선물거래소 등 3개 증시를 통합한 단일거래소 ‘한국거래소(가칭)’ 출범 결의. 현재 3개 시장은 한국거래소의 사업본부체계로 전환.
2003년 6월 4일 - 정부의 증시통합안 마련을 위한 실무작업반 구성돼 본격 가동. 재경부 서기관을 팀장으로 증권거래소·선물거래소 각 5명, 코스닥위원회·증협·코스닥증권·증권예탁원·증권전산 각 2명.
2003년 6월 18일 -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벤처기업협회, 벤처캐피탈협회 공동 코스닥 독자성 확보 위한 대책반 구성.
<전문가들에게 듣는다>
증시통합과 코스닥의 위상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견해가 엇갈린다. 벤처기업·코스닥업계에서는 증시통합의 효율성보다는 코스닥의 위축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반면 정부와 학계에서는 관리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큰 틀 마련과 효율성 확보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병기 재정경제부 서기관(증시통합대책반장)=증시통합대책반에서는 법률안과 시장 효율성을 근거로 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코스닥의 독자성 강화나 이미지 강화 등은 현재로서는 논의대상이 아니다. 코스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경우 이를 반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각 시장의 특성 살리기보다는 통합과 이에 따른 제도·구조의 정비다.
◇조영석 건국대 경영대 겸임교수(증권분석사)=코스닥기업의 경우, 비정상적인 주가흐름을 보인 경우도 많고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시장 효율성과 공정성이 더욱 많이 확보돼야 한다. 여기에는 여러 조치가 있을 수 있고 증시통합 역시 한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코스닥이나 등록법인협의회 등이 시장 건전화,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기에 통합이 논의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류해필 SK증권 상무=증시는 기업에는 자금조달 기회를, 투자자들에게는 투자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장개편시 이런 부분이 고려돼야 한다. 그러나 현 개편안은 시장원리 이외에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인상이다. 기업과 투자자들의 요구를 반영했다기보다는 시장 관리자들의 편의에만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가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관리 효율성에만 집중하고 있다.
◇곽성신 벤처캐피탈협회장=단일거래소체제의 개편안은 신성장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코스닥은 주식회사다. 거래소시장과 경쟁체제를 유지하며 신성장산업의 직접금융조달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확고한 특성이 있는 시장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코스닥이 많은 비리로 얼룩졌지만 순기능이 적지 않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거래소와 선물거래소의 통합과정에서 코스닥시장도 함께 통합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통합은 결국 코스닥이 열등시장으로 추락하거나 거래소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 정도로 격하되는 것이다. 통합효과만을 강조할 경우 코스닥은 특유의 역동성을 잃게 될 것이다. 기술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전영삼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장·씨엔씨엔터프라이즈 대표=코스닥시장의 독립성 확보와 발전방향을 위한 조사연구 및 정책건의활동을 준비중이다. 무조건 증권시장 통합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을 하더라도 코스닥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사와 정책건의 등에 앞장서겠다. 코스닥의 독자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기존 등록기업은 물론 프리코스닥기업들의 의욕이 저하되고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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