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빅브러더와 권력이동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

 

 “모든 사람은 항상 감시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사상경찰(thouhgt police)들은 아무 때나 원하는대로 그 누구의 선(line)에라도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해도 그들에게 들리며, 모든 동작이 그들에 의해 면밀한 조사를 받는다는 가정하에서 살아야 하고 또 본능처럼 버릇이 되어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윈스턴은 텔리스크린(tele screen)에 등을 돌린 채로 서 있었다. 그러는 것이 좀 더 안전했다.”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1984’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사상경찰은 어떠한 소리나 어떤 모습도 감지할 수 있는 최첨단 장치 ‘텔리스크린’을 조작하는 빅브러더의 충성스런 수하들이다. 빅브러더는 ‘텔리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들을 감시·통제함으로써 절대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어한다.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에 출판된 소설에 최첨단 컴퓨터와 네트워크 그리고 광통신이 결합된 과학기술 메커니즘이 등장한다는 것은 일단 놀라운 일이다.

 고도정보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조지 오웰의 예언대로 알게 모르게 과학기술에 의해 감시받고 통제받는 환경속에서 살고 있다. 가정·학교·직장·사회·문화·경제, 무엇하나 과학기술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있는가! 앞서기 위해 또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편리해지거나 권익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이미 사람의 내면 깊숙하게 침투해서 생활의 일부이자 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나흘 동안 전국민의 불안한 심사를 쥐락펴락했던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사태는 그 단적인 사례다.

 조흥은행 노조가 처음부터 파업의 성패를 은행 정보의 총집결지인 전산센터의 정상적인 운영 여부에 두고 협상을 벌인 것은 충격적이다. 노조의 새로운 투쟁전략이기에 앞서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은행의 전산망 마비는 지하철이나 화물차 운행을 물리적으로 정지시키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갖는다. 또 전쟁보다 더 심각한 심리적 공황상태를 거져올 수도 있다. 은행망을 파업도구로 삼은 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조가 이미 빅브러더로서의 의향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조흥은행 파업사태가 ‘1984’와 다른 것이 있다면 ‘텔리스크린’과 같은 과학기술의 위력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이 절대권력자에서 상대적 권력자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빅브러더에 대한 의심은 그동안 읍·면·동사무소 행정전산망, 전자주민카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을 추진해온 정부에만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파업은 결과적으로 빅브러더에 대한 통념을 깨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제는 누구나 ‘텔리스크린’을 소유하고 조작할 수 있는 상대적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산망을 매개로 한 권력이동현상은 오는 30일로 예정된 금융노련의 총파업 때 또 한번 현실로 드러날 전망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모든 공공기관의 파업 양태가 앞으로는 전산망을 통한 힘의 과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전산망을 움켜쥔 사람들의 생각은 1·25 인터넷 대란이나 수시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해독성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나 빅브러더가 되고 싶은 가치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는 권력이동을 탓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잇따른 새로운 빅브러더 출현 현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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