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군 과기부 장관 특별 인터뷰

오래 전부터 그를 아는 사람은 대개 아주 정력적이고 부지런한 과학자로 기억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재직중 참여정부 초대 과학기술계 수장에 오른 지 곧 넉달째를 맞는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56).

 KIST에서도 그랬듯 과기부 내에서도 박 장관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임 이후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대덕연구단지 현장을 찾은 것만도 이미 수십차례. 역대 장관으론 처음으로 아예 대덕에 별도 집무실까지 마련, 틈(?)만 나면 내려간다.

 산을 특히 좋아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인근 산을 찾는 것이 박 장관의 건강 비결이다. 그래서인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30대의 체력을 간직하고 있다. 장관이기에 앞서 과학자로서 그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지도교수였던 레오 파퀘트 교수란다. 이유가 재미있다. 그 교수가 매일같이 오전 7시30분에 출근, 밤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아주 부지런했기 때문이란 것.

 아직 박 장관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엔 이르감이 있는 듯하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일단 탄력만 받으면 엄청난 추진력을 갖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전한다. 전자신문이 이제 학습을 끝내고 본격적인 과학기술 정책구상에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박 장관을 만났다. <대담=유성호 디지털산업부장>

 

 ―과기부 장관 120일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우리 과학기술인들은 90년대말 구조조정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간 연구현장을 찾을 때나 조찬간담회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이를 치유하는 데 누구보다 노력했습니다. 과학자들도 이젠 정부가 자신들을 알아주고 도와주려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닫혔던 마음의 장벽을 어느 정도 허문 게 의미있는 성과라 생각합니다.

 ―참여정부 들어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말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국정과제이니만큼 뭔가 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정부가 추구하는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어떤 것입니까.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말속엔 ‘과학기술’과 ‘사회’란 두 화두가 있습니다. 이는 과학기술 측면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사회에서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회와 과학기술계가 서로를 인정하고 같이 움직이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 중심사회의 기본 개념입니다.

 그동안 사회에선 과학을 너무 동떨어진 시각으로 바라본 게 사실입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되면 과학이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역사, 심지어 삶의 질까지 바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과학이 너무 경제의 틀속에서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까. 또 과기부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교육이 달라져야 합니다. 고등학교가 이과와 문과로 나뉜 것부터 고쳐나가야 합니다. 15∼16살에 인생의 방향이 결정돼선 안됩니다. 기술만 갖고 창업하는 벤처기업가들이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기업경영을 위해 기술 외에도 자금, 인력, 경영, 세무, 회계 등 필요한 게 너무 많습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소양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과기부는 과학기술이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이 되도록 과학기술 중심사회의 개념과 기본 방향, 비전을 만들기 위해 별도 기획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중점 추진과제를 도출한 뒤 이에 대한 폭넓은 여론수렴 작업을 거쳐 그 모습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과거 정권과 비교할 때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기조상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과학기술의 투자효율성을 높인다는 기본적인 톤에선 과거나 별 차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엔 효율을 높이는 평가가 중심이었다면, 참여정부에선 잘하는 사람을 더 도와주는 평가체제를 정립할 생각입니다. 즉 못하는 사람을 덜 주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줌으로써 전체 연구분위기를 살리자는 취지입니다. 연구과제 관리 역시 연구비를 따기 위한 경쟁보다는 실제 연구과정에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형태로 개선해 나갈 생각입니다.

 ―신정부 들어 부처간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유사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잡음을 내는 경우가 많아진 듯합니다.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가 대표적일텐데, 무슨 대안이 없을까요.

 ▲기본적으로 특정 부처가 독점하는 것보다 여럿이 경쟁하는 게 효율면에선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느냐겠지요. 과기·산자·정통부는 각기 기능과 역할이 달라 특정 부처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4중주를 예로 들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이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 모양도 다르고 음색도 다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별로 아웃풋을 최대로 낼 수 있도록 조정을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말이 나와서 얘기지만, 과기부가 R&D 주무부처이지만 다른 부처도 R&D기능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젠 정부 R&D부문의 교통정리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된 것 아닙니까.

 ▲R&D는 크게 보면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로 나뉘며 과기부가 기초연구, 산자부나 정통부 등이 응용연구를 각각 맡아왔습니다. 그런데 산업체들이 R&D기능을 강화하면서 다른 부처들이 응용연구에서 기초연구쪽으로 자꾸 내려오는 것이지요.

 하지만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는 일과 열매를 맺는 일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초연구 부처와 그 기술을 사서 사업화하는 응용연구 부처는 다릅니다. 앞으론 사회의 평가가 달라져야 합니다. 씨뿌리는 일을 시작으로 유실수를 만들기까지 겪는 온갖 고초를 인정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출연연과 같은 기초연구를 맡는 과학기술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가 너무 인색한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한국의 IT신화를 있게 한 TDX, CDMA, 반도체, LCD 등도 따지고 보면 과학기술계의 노력과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열매를 맺고 이를 팔아 이익을 내는 산업체의 공으로만 돌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요. 이같은 풍토가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을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수없는 실패를 거듭하며 개발한 기술이 빛을 본다는 점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실패가 없이는 독창적인 기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계도 이젠 씨앗을 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열매를 맺는 데도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소관부처가 총리실이지만 국가 R&D의 중추 신경계인 출연연 문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요. 특히 최근엔 구조조정과 연구회 체제개편 움직임으로 연구원들의 걱정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출연연에 대해선 긍정적·부정적 시각이 상존하지만 부정론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상황을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연연들은 초기엔 산업체 연구를 대신하다 산업체 연구소가 업그레이드되면서 중소벤처 지원쪽으로 돌아서는 등 기능과 역할이 계속 변해왔습니다. 이젠 국가 R&D를 주도하는 국가기반(SOC)부문과 기업체 지원을 같이 가져가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지요.

 따라서 출연연에 본연의 미션을 새로 부여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기업들이 하기 어려운 우주, 천문, 핵융합, 원자력 같은 하이리스크 분야에 집중케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PBS제도 점차적으로 개선하고 출연연 체제 역시 현 위치에서 네트워킹을 강화, 자연스럽게 기능과 효율을 높이는 데 뜻을 모아야 합니다.

 ―청소년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여러 대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교차지원이나 입시 위주의 과학교육보다는 생계나 보람은 물론 천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원들의 무정년제 적용 등 평생직장 개념 도입과 과학기술인공제회, 연금제 등 노후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공계 연구원 병역특례자에 대한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공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힘듭니다.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이지요.

 ―끝으로 장관이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취임 넉달 가까운 기간을 되돌아 볼 때 아쉬운 점은 없는지요.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과 사회의 벽을 허무는 일은 꼭 이루고 싶습니다. 이는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구축하는 일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와 과학기술계가 안고 있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입니다. 또 그동안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바빠서 일선 연구현장을 더 많이 찾지 못한 점입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연구현장을 찾아 과학기술인의 자존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을 낼까 합니다. 연구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우리 과학기술계를 되살릴 수 없습니다.

 <정리=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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