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혁명이 시작됐다](23) 유비쿼터스 로봇의 출현

 요즘 정부가 앞장서서 로봇을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간주하면서 로봇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머지않아 로봇이 온갖 궂은 일을 대신해주는 꿈처럼 편한 세상이 올 것이라며 장밋빛 예측을 부풀리고 있다. 어릴 적 만화책을 보며 꿈꾸던 슈퍼로봇이 마침내 현실로 등장하는 것인가. 대중의 상상속에서 미래 지능형 로봇이란 어김없이 두 발로 걸어다니고 주인이 시키는대로 척척 힘든 가사일을 도와주는 하인과 같은 존재다. 집집마다 로봇하인을 부리면서 귀족처럼 편한 삶을 누리는 세상. 하지만 이처럼 즐거운 공상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사람들이 로봇기술의 진보만 기다리는 동안 로봇을 둘러싼 기술환경,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란 거대한 흐름이 밀려들면서 미래 로봇세상의 지형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상과학영화에 흔히 나오는 인간형 로봇과 유비쿼터스 환경속에서 만나게 될 ‘진짜 로봇’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2009년 구보씨는 퇴근시각에 맞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구보씨의 사이버 개인비서 ‘지니’. 지니는 주인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할 일은 알아서 처리하는 매우 유능한 비서지만 진짜 사람이 아니라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어느새 휴대폰 액정화면에는 귀여운 지니의 아바타가 뜨고 이 가상 생명체는 구보씨에게 말을 건넨다. “주인님, 오늘 무척 덥죠. 기상청 정보에 따르면 지금 바깥 온도는 32도라고 합니다. 미리 준비를 해둘까요.” “음. 맥주나 한잔 하고 들어갈테니 적당히 알아서 준비해.”

 구보씨가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머무는 동안 그의 저택은 갑자기 분주해진다. 욕조에는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청소로봇이 집안을 윙윙 누비면서 방바닥을 닦는다. 정원에선 스프링클러가 저절로 작동하면서 잔디에 물을 뿌리고 실내에는 에어컨 바람이 감돈다. 인근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구보씨가 좋아하는 팥빙수 배달주문이 인터넷으로 접수된다. 잠시 뒤 구보씨가 회사에서 돌아오자 집 안팎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욕탕에는 시원한 물이 가득하다. 냉수욕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누르니 TV 화면에 친숙한 가상 얼굴이 나타난다. “오늘도 수고하셨죠. 빙수는 냉장고 안에 있으니 드시기바랍니다. 또 불러주세요.” 오… 언제나 상냥한 지니의 목소리. 구보씨는 빙수 그릇을 꺼내면서 무더운 여름날 저녁의 작은 행복을 만끽했다.

 이 모든 서비스 과정에서 분주하게 집안을 걸어다니는 가정부 로봇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눈치빠른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감독아래 기동성을 지닌 작업용 단말기(청소로봇, 자동수도꼭지…)와 주택설비를 거미줄처럼 연결한 유무선 네트워크망이 삼위일체가 되어 모든 일을 해낸 것이다. 이것이 로봇과 지능화된 주변환경이 하나로 엮여서 움직이는 유비쿼터스 로봇의 일하는 모습이다. 꿈같은 얘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정통부가 오는 2007년까지 구현할 유비쿼터스 로봇기술의 일부 응용사례에 불과하다.

 일상의 사물에도 지능과 네트워크 기능을 부여하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첨단 로봇산업도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주거공간의 컴퓨터 및 센서망과 연동해서 언제 어디서나 주인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로봇의 개념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가사일을 도울 정도로 똑똑한 인간형 로봇(바이센테니얼 맨)이란 혼자서 주변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며 기동성을 가져야 하고 당연히 복잡한 기계부품으로 꽉 들어찬 최첨단 제품이 될 것이라고 상상해왔다. 그러나 로봇에게 필수적인 인공지능과 감각기능을 로봇을 둘러싼 주변환경속에 분산시킬 수 있다면 굳이 값비싸고 덩치 큰 로봇가정부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소파와 옷장, 현관문까지 지능을 갖는 유비쿼터스 주거환경속에서 전통적인 가정용 로봇은 그저 주변 물건들이 시키는 명령을 최종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용 단말기(work terminal)에 불과하다. 하지만 로봇 입장에서 유비쿼터스 환경은 컴컴한 방에 햇볕이 비치는 듯한 축복이나 다름없다.

 요즘 2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는 청소로봇을 살펴보자. 이 값비싼 가정용 로봇은 방 안에서 자기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곧잘 헤매는 장님이다. 하지만 소파나 침대가 자신의 위치와 구조를 로봇에게 알려준다면 이 청소로봇은 최적의 동선을 찾아 침대 밑까지 들어가 깨끗하게 먼지를 닦아낼 수 있다. 이처럼 로봇이 주변 사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유비쿼터스 주거환경에서 로봇의 작업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이제 로봇은 네트워크를 통해 주변의 상황변화를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자기의 임무를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로봇이란 주인의 지시만 수동적으로 따르는 기계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대리인(agent)의 단계로 진화하는 것이다.

또 유비쿼터스 환경은 로봇에게 무한한 이동의 자유를 부여한다. 앞에서 언급한 구보씨의 사이버 개인비서 ‘지니’를 보라. 유비쿼터스 로봇시스템의 두뇌역할을 해당하는 이 인공지능 생명체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어디든 옮겨다니면서 현장의 정보를 수집하고 작업단말기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주인이 로봇을 호출하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센서, 카메라 등) 망을 통해 전송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주변의 로봇단말기를 작동시켜 주인이 원하는 작업을 언제 어디서나 수행할 수 있다.

 주인이 집에 있든 사무실에 있든, 미국 혹은 일본에 가더라도 이러한 유비쿼터스 로봇시스템은 어디서나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로봇은 이미 실용화된 로봇과 통신기술을 적당히 조합하고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이 구축된다면 우리 곁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현실이다.

 정통부가 다음달 발표할 IT기반 지능형 로봇 개발 5개년 사업은 상당부분 이같은 유비쿼터스 로봇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들은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환경은 유비쿼터스 로봇시스템의 개발, 상용화에 무엇보다 유리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정통부의 로봇개발계획에 참여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김종환 교수는 “로봇은 결국 이동형 컴퓨터이고 어디에나 컴퓨팅 기능이 들어가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로봇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면서 유비쿼터스 로봇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다음달 공개될 정통부의 지능형 로봇 개발사업은 유비쿼터스 로봇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프로그램, 유무선 네트워크상에서 로봇을 원격제어하는 분야에 상당한 비중이 집중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결국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기계로봇에게 자율적인 판단능력과 언제 어디서나 인간과 함께 할 수 있는 융통성을 부여할 전망이다. 이제 설거지로봇·청소로봇·경비로봇만을 로봇이라고 간주하지 말자. 그들은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천한 일을 하는 ‘아랫것’들일 뿐이다. 첨단로봇의 역할은 주변 사물환경의 지능화에 따라 예전에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유비쿼터스 혁명이 로봇산업과 만나는 순간 우리 삶의 패러다임은 인터넷 이후 또 한번 바뀔 것이다. 앞으로 지능형 로봇이란 집안에 처박아둔 자동청소기가 아니라 주인이 휴대폰·PDA로 부르면 언제 어디서나 도와주는 유비쿼터스적인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마치 알라딘이 낡은 램프를 문지르면 튀어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말이다.

 

 

 팀장 :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인터뷰]오상록 KIST 지능제어연구센터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지능제어연구센터장인 오상록 박사(45)는 유비쿼터스 환경아래서 새로운 로봇 개념과 관련기술을 연구해왔고 정통부의 지능형 로봇 개발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는 로봇 과학자다.

 ―로봇 연구계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로봇은 수십배나 활용범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봇 자체에 인간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통하면 로봇의 실용화를 막아온 많은 기술적 난제가 너무 쉽게 풀린다.

 ―유비쿼터스 로봇과 일반 로봇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인터넷에 접속되는 PC와 모뎀이 고장난 PC를 비교하면 된다. 사람들은 로봇만 쳐다보니까 주변 기술환경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로봇을 둘러싼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지능형 로봇의 활동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유비쿼터스 로봇은 항시 네트워크에 연결되기 때문에 외부침입에 취약할 위험도 있겠는데.

 ▲로봇의 네트워킹을 통해 해킹당할 경우 작동이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앞으로 정통부가 추진할 IT기반 지능형 서비스로봇사업의 상당부분은 유비쿼터스 로봇 기술을 구현하는 데 집중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지능형 로봇은 언제 어디서나 인간과 함께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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