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에블린

 - 에블린

 

 OECD 가입국 중에서 이혼율 1위, 현재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현실을 반영하듯 가족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입되어 소개되는 외화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지체장애인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국내 흥행이 불투명해서 수입업자들에게 냉대를 받았던 ‘아이 엠 샘’의 놀라운 흥행 성공은 가족간의 정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갖는 보편성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

 1953년 아일랜드 에메랄드섬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한 ‘에블린’은 ‘아이 엠 샘’과 여러가지로 비슷하다. 아이를 기르기에 결격사유가 있는 아버지가 국가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해 빼앗긴 아이를 되찾는다는 기본 줄거리는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동의 무늬는 다르다. 역시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가슴을 적신다.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로 아일랜드 가족법을 바꾼 실화를 소재로 한 ‘에블린’은 드라마의 짜임새가 다소 느슨하고 극적 갈등이 입체적으로 살아나지는 못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모·자식 사이의 정을 자극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준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호주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후 실업자인 도일은 부양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에게 아이를 빼앗긴다. 아이들은 수녀원 등에서 자라게 되지만 도일의 소망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그는 개과천선해 술을 끊은 후 낮에는 페인트공·목수 등의 잡일을 하고 밤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팀을 이루어 술집에서 노래도 부르며 돈을 모은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당시 아일랜드 가족법은 배우자가 죽지 않는 이상 부모 양쪽 동의하에 자식들의 양육권을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호주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아내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아내의 동의가 없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도일은 국가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싸움에서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단골 술집의 여자와 변호사 등이 도일을 정신적·물질적으로 돕는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좋다. 제5대 제임스 본드로 발탁된 후 ‘007 골든아이’부터 최근의 ‘007 다이 어나더데이’까지 4편의 007 시리즈를 흥행시키며 스파이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에블린의 아버지 데스먼드 도일 역을 맡았다. 그 자신이 아일랜드 출신이고, 사건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소재였다. 꺼칠한 모습으로 수염을 기르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빼앗긴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의 또다른 매력과 만나게 된다.

 ‘아이 엠 샘’의 아역배우 다코타 패닝 못지 않은 똑똑하고 착한 에블린 역은 소피 바바세유가 오디션을 뚫고 낙점됐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낯익은 ‘가을의 전설’의 에이단 퀸이나 드라마 ‘ER’ 시리즈의 줄리아나 마길리스 등이 출연한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년)’의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이 노장에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은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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