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게임 아이템 현금거래 논란

 #실제상황 1=불법으로 빼낸 개인정보를 이용해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무려 5경9000조원의 사이버머니를 모은 뒤 현금으로 되팔아 7000여만원을 챙긴 기업형 사이버 범죄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京)은 조(兆)의 1만배인 숫자단위다.

 #실제상황 2=국내 최대의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 아이템베이의 경우 거래규모가 꾸준히 증가, 한달 최고 거래액이 140억원에 달하고 올 한해 거래실적이 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지털코드에 불과한 게임 아이템이 현실세계에서 수만원에서 수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로, 직장인과 가정주부들도 부업으로 아이템 거래시장에 뛰어들 정도이고 그 중 일부는 본업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아이템 현금거래는 사회악이므로 규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이버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정하고 양성화해야 하는가? 규제론과 양성화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게임 아이템 거래시장은 연 5000억원 규모(업계 추정)까지 성장, 사회·경제적 파장도 커지고 있다.

 게임 아이템이란 주로 온라인게임 상에서 사냥·전쟁 등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물품을 말한다. 각종 무기, 갑옷, 방패 등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게임을 더 잘할 수 있고 게임 안에서 더 인정을 받는다. 좋은 아이템을 구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서라도 사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론 게임 아이템과 관련된 각종 범죄가 사이버 범죄의 단골 주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규제론자들은 온라인게임이 게임 자체의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각종 아이템의 등장을 통해 중독성을 높이고 사행성을 조장하는 등 범죄의 온상으로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임 자체에 아이템 의존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인데 아이템 현금거래까지 더해져 게임의 중독성과 사행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각종 사회적 문제를 가중시킨다는 것. 실제로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사이버 범죄의 50% 정도를 온라인게임 범죄가 차지하고 있으며 범죄의 원인은 대부분 게임 아이템과 관련돼 있다. 이러한 위해성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의 정신적, 신체적 발달은 물론 사회적으로 제대로 성숙하는 데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이 규제론자들의 주장이다.

 반면 양성화론자들은 사이버 사회에서 게임 아이템 거래는 하나의 트렌드로 보고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한다. 이들은 포털사이트들이 현금을 주고 아바타를 사고 파는 것처럼 게임 아이템 거래도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이라며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된 사이버 사회에서 게임 아이템 거래는 막을 수 없으며 기존 산업사회의 잣대로는 규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이템과 관련된 대표적인 범죄행위인 ‘타인의 계정 도용’ ‘사기’ ‘폭력사건’ 등은 오히려 규제하려다보니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양성화론자들의 논리다.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를 좀 더 파고 들어가면 논란의 여지는 더욱 많다.

 첫번째가 아이템에 대한 온라인게임 개발사들의 이중적 태도다.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업체들은 아이템의 희소성을 높이는 등 아이템 현금거래를 조장하면서도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 위해 약관상 현금을 통한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는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규제론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며 강력히 비난하는 상태. 청소년윤리위원회는 5월 인터넷 사이트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전체 게임에서 아이템의 비중을 낮추는 자율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아이템 현금거래의 경제적 효용성도 논란거리다. 김승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은 “아이템 현금거래가 게임의 중독성을 강화시켜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추기고 이들이 경제적 가치가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되는 등 경제적, 사회적 손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바타아 아이템은 사이버 세상에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보이면서 디지털 이미지가 훌륭한 가치를 가진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산업발전 논리에서도 양측의 의견차는 분명하다. 현대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이템 거래에 의존하는 온라인게임은 소수 국가에서나 허용될 일이지 시장이 큰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통되지 않는다”며 산업보호 논리를 경계했다. 규제론자들은 경제활동인구가 아이템 거래에 몰릴 경우 국가 산업 기반에 영향이 미칠 것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양성화론자들은 온라인게임이 국가의 주요 수출상품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아이템 거래가 온라인게임업체들의 매출을 증대시키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템베이 김강열 부사장은 “사회적 합의만 이뤄지면 무궁무진한 디지털 이미지를 자산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 서버를 통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할 경우 국가적인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이템 소유권 문제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용자 사이의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이 만들어지는 온라인게임의 속성상 게이머는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또 다른 주체(프로슈머)라며 아이템 소유권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은

 패러다임이 급변하면서 법적인 규제가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도 마찬가지. 지난해 10월 서울지방법원이 “온라인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를 막을 만한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웹젠의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행위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사례는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함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등 아이템 현금거래 규제 관련 당국들도 통일된 안이 없어 업무에 혼란을 겪고 있고 있다. 아이템 거래 규제론자들은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사회적 심각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양성화론자들은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유는 다르지만 구체적인 기준안이 마련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를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기관에서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흡하고 피상적이어서 업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청소년 보호라는 막연한 대의명분에 숨어 제대로 된 연구와 구체적인 규제안 개발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양성화 진영에서는 해당업체의 실익이 걸려있고 언론 등을 통해 공격도 많이 받는 만큼 양성화 논리를 빠르게 개발하고 있다. 현대원 교수는 “아이템 거래 실상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대규모 연구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규제안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아이템 현금거래 관련 일지>

 2002년 8월 웹젠, 3개 사이트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 금지 가처분 신청

 2002년 10월 서울지방법원, 법적 근거 부재로 가처분 신청 기각

 2003년 4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아이템베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

 2003년 현재 아이템베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 및 헌법소송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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