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이야기](6)전설이 된 사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 보면 가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빚어진다.

 특히 요즘 내가 하고 있는 클레이메이션 작업은 셀이나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작업과는 그 환경이 판이하게 달라 더욱 많은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은 주로 의자에 앉아서 하지만 클레이메이션 작업은 진흙으로 만든 캐릭터를 계속 움직여 가며 촬영을 하는 것이라 모델링과 촬영작업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작업세트 위에 놓인 클레이 캐릭터의 동작 하나 하나를 움직여 촬영하는 작업은 일반 애니메이션에서 동화작업과 채색, 촬영을 융합한 형태와 같지만 이 모든 작업이 세트장에서 이뤄진다. 더구나 이 일은 어려워서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하기도 하고 결국은 작업을 맡은 사람이 일련의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을 해가며 진행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작업 스케줄에 쫒겨 며칠 동안 잠도 못자는 일이 허다하다.

 클레이메이션은 그 특성상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도중에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도 어렵다. 이로 인한 고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심지어 클레이메이션 작업을 하다 보면 과로로 인한 사고도 발생한다.

 언제인가 한 후배가 작업을 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사건은 두고 두고 후배들과 그 후배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 후배는 방송 스케줄에 쫓겨 내리 3일 동안 밤샘작업을 해야 했다. 클레이 캐릭터의 동작을 하나 하나 만들어 촬영하기를 무려 3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그는 선 채로 기절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의지력을 보였다. 기절해 쓰러지면서도 자신이 애써 작업한 작품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푹신한 유토로 만들어진 작업대를 피해 딱딱한 시멘트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었다. 결국 그는 크게 다쳐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이 사건은 이후 클레이메이션을 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의지의 정도를 나타내주는 전설이 돼버렸다.

 그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후배의 경우 피로가 누적돼 더 이상 참기 힘들다고 생각돼서인지 잠시 쉬겠다며 의자에 앉았다가 그대로 눈을 뜬 채 기절하고 말았다. 놀란 동료들이 달려가 온몸을 마사지하고 얼굴을 두드리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지사.

 이들 사건은 모두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정열이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직도 클레이메이션 작업실에서는 이같은 사건이 가끔 일어난다. 선후배를 떠나서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경우에 따라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뒤늦게나마 경의를 표하고 싶다.

 <손동수 픽토 클레이메이션 감독 artplis@freechal.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