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전자상가를 비롯해 재래시장 등 지역 곳곳에 포진해 있는 중소 유통업체의 생존방안을 놓고 산업계와 학계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중소 유통망의 개선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재개발과 현대화를 통해 할인점·백화점 등 기업형 유통채널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중소 유통채널의 도태는 자연스런 시장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오히려 중소 유통점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는 쪽이다. 예를 들어 재래시장이나 집단상가의 시설을 할인점과 백화점 수준에 걸맞게 변화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옛멋’을 더욱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흥정 등 전통적인 상거래 방식, 재래 시장이 풍기는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 관광특구 형태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별다른 강점이 없어 관광특구가 힘든 중소 유통점은 주변의 할인점이나 백화점과 연계해 상품이나 서비스 면에서 차별화하는 것이 생존방안이라는 얘기다. 기업형 유통점과 경쟁하는 방식으로 중소 유통점을 현대화해 봤자 큰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일축한다.
매번 유통업체 세미나나 심포지엄에서는 서로 상반된 두가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만큼 나름의 논리와 배경을 깔고 있다. 현대화하는 방안도 타당하고 주변 대형 유통점과 연계하거나 오히려 전통화하자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당연히 어느쪽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올해부터 4년 동안 2조원 가량을 투자, 15개 정책과제를 선정하고 중소 유통업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발표했다. 15개 과제에는 앞에서 제시한 해결방안이 ‘잡탕’처럼 모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작 ‘왜 중소 유통망을 활성화해야 하는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에는 답변이 시원치 않다. 유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이야기하지만 경쟁력은 사실 할인점이나 백화점이 훨씬 높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나 고용유지, 일자리 창출이라는 논리도 대규모 할인점 심지어 새로운 유통 채널로 부상하는 인터넷 쇼핑몰·TV홈쇼핑에 비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목적과 원칙이 분명하지 않으면 해결방법 역시 여론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정부의 정책안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중소 유통점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왜 중소 유통망을 활성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좀더 분명한 목적과 소신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쉽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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