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KT와 SK텔레콤. 유무선 통신시장에서 치열한 시장경쟁 못지 않게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한치의 양보없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특정 슬로건을 연상시키는 두 회사의 광고 전쟁은 대표적인 사례. 지난해 월드컵을 전후로 ‘렛츠KT(KT)’나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힘(SK텔레콤)’이란 광고문구는 이제 낯익은 말이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기술력만큼이나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계 통신장비 업체들도 세계적으로 쌓아온 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 통신장비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통신시장의 브랜드화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들의 현재와 미래 전략을 상세히 살펴본다.편집자
◆KT
‘전화국’하면 어떤 인상이 떠오를까. 불과 10년전만해도 “유선전화에다, 요즘 같은 세상엔 다소 고루한 느낌을 주는, 특정 국가내에 한정된 사회기간시설(SOC)”이라는 느낌이 적지 않았을 법하다. 그러나 요즘 KT를 보고 예전 전화국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이는 드물다. 최근 수년간 기업브랜드 전략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지난해는 KT(대표 이용경 http://www.kt.co.kr)가 백년 역사를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변신한 한해였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민영화와 세계적 행사인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아예 기업의 이름을 바꿔버렸다. 전통적인 색깔이 짙게 밴 한국통신이라는 사명을 KT로 개명하면서 전면적인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KT 홍보실 조철제 과장은 “사람으로 치자면 이름 석자를 갈아버린 셈”이라고 했다. 새시대에 걸맞은 기업으로 갱생하려는 KT의 의지가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흔히 알려진 KT는 기업브랜드, ‘Let’s KT’는 브랜드 슬로건이다.
KT는 이제 국내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 전화회사가 아닌 첨단 정보통신회사를 지향한다는 의지를 곳곳에서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첨단 정보통신 서비스에 적극적인 젊은층과 각계 여론주도층, 해외에선 투자자나 기술수출국의 오피니언리더들이 주요 대상이다. KT 본사 및 자회사 가족들 또한 통신그룹 소속으로서 일체감과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브랜드슬로건인 ‘Let’s KT’를 통해 가장 먼저 전파했던 이미지는 ‘희망’이다. 궁극적으론 KT의 모든 서비스·상품이 현재를 살아가는 ‘해법’임을 제시하는 대표성과 고객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친근감, 고객에게 희망을 주는 자긍심이 각각 담겨있다. 앞으로 KT가 역점을 두는 브랜드 캠페인 전략은 ‘KT로 만나자’다. 정보기술(IT)이 삶속에 녹아든 시대 환경에서 KT의 원대한 역할론을 반영하는 비전이다.
기업 브랜드 전략뿐 아니라 현재 100여가지의 개별 상품에 대한 브랜드화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KT의 주력 상품인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메가패스’는 브랜드 전략이 성공한 대표적 작품. 지금은 디지털가입자망(xDSL)·위성인터넷 등 초고속인터넷 상품의 통합 브랜드이기도 하다. 메가패스는 현재 초고속인터넷 시장점유율 절반을 오르내리는 지위다.
하지만 KT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첫 출시할 당시인 2000년 4월만해도 하나로통신의 ‘나는 ADSL’이 90% 가까운 소비자 인지도를 기록할 때였다. 그러다 한달뒤인 5월 메가패스라는 브랜드 전략이 구사되면서 본격적인 뒤집기가 시작됐고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메가패스는 4.5%의 점유율을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당시 ADSL 시장에 진입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떤 브랜드로 선발 경쟁사를 제압하느냐였다. 기술용어에 불과한 ADSL을 브랜드로 삼아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스런 일이기도 했다.”
당시 메가패스 브랜드 마케팅을 고안했던 윤용석 팀장은 후발주자들의 전형적인 논리인 ‘품질 논쟁’에서 벗어난 것이 주효했다고 회상했다. 메가패스는 초고속인터넷 시장 수요를 조기에 활성화하고, 유사 서비스 상품의 경쟁이 아닌 기업 대 기업의 싸움으로 대립구도를 바꿔냈다. 결국 국내 최고의 통신인프라를 보유한 KT의 강점을 내세웠던 것이다. 이어 지난 2001년, 2002년으로 넘어오면서 메가패스 전략은 ‘파워 브랜드 양성’을 통한 평생고객화로 진화해가고 있다.
KT가 유무선 통합서비스 전략아래 차세대 주력상품으로 육성중인 무선LAN ‘네스팟’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네스팟(Nespot)은 메가패스에 이어 미래 무선 기반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평정할 브랜드 전략이라고 KT는 설명한다. 네트워크(Network)·차세대(Next)·신(Neo)이라는 중의적 표현과 ‘나의(내것)’란 뜻의 영어 표기가 합쳐져 ‘네’를 만들어냈다. 스폿(spot)은 주요 지역을 뜻한다. 결국 ‘나를 위해 준비된 새로운 인터넷’ ‘주요 지역 어디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미래 지향형 브랜드 전략이다.
◆SK텔레콤
SK텔레콤(대표 표문수 http://www.sktelecom.com)의 ‘스피드011’은 국내 통신시장에 기업 브랜드 마케팅을 처음 정착시킨 사례로 꼽힌다. 지금 기업이미지(CI)도 지난 1997년 한국이동통신(KMT)에서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했을때부터다. SK텔레콤은 브랜드 자산가치의 근간이 무엇보다 뛰어난 상품력, 즉 서비스 품질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스피드011은 늘 한발 앞선 이동통신 기술의 구현과 혁신적인 마케팅 개념이 녹아들어 시장 선도사업자로서 이미지를 굳혀왔다. 무선인터넷 표준인 ‘WAP’을 국내 처음 상용화하고, 멀티미디어 서비스인 cdma2000 1x EVDO를 세계 최초로 구현하게 된 것도 이런 브랜드 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수가 인정하는 뛰어난 통화품질과 한국 이동통신을 대표하는 브랜드라는 게 스피드011의 정체성이다. 고객들에게 서비스 수준과 같은 편익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부심까지 느끼게 하는 정서적 가치가 있다.”
SK텔레콤 신영철 상무는 이제 브랜드가 기업만의 것이 아닌,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좋은 브랜드’에서 ‘좋아하는 브랜드’로 발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SK텔레콤의 기업브랜드 전략에 큰 분수령이 될 계기는 내년초로 예정된 번호이동성 도입. 사실상 011이라는 번호의 차별성이 사라짐으로써, 그동안 유지돼 왔던 브랜드 전략은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마케팅부문장인 조신 상무는 “구체적인 전략을 밝힐 순 없지만, 기존의 브랜드 자산을 이어가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연구중이며 앞으로도 브랜드 파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번호이동성 도입후 기업의 실체를 스피드011로 담아내기 힘든 시점에서는 전면적인 CI 변경도 검토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또한 브랜드 마케팅에서 한발 앞섰다고 평가받는 대목은 이른바 ‘세그먼트’ 브랜드 전략. 세그먼트 브랜드란 연령대와 고객특성별로 타깃 마케팅 전략을 설정, 이에 걸맞은 브랜드를 구사하는 것이다. 대학생층을 겨냥한 ‘TTL’과 청소년층 대상의 ‘팅(Ting)’, 그리고 주부층을 위한 ‘카라(CARA)’, 20∼30대 직장 남성층을 대상으로 한 ‘UTO’ 등이 대표적인 세그먼트 브랜드들이다.
또한 휴대폰·PDA·차량용단말기(VMT)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공하는 유무선 멀티 인터넷 브랜드인 ‘네이트’도 이젠 친숙해진 데이터서비스 브랜드다. 이 가운데 TTL은 SK텔레콤이 ‘고가의, 장년층’ 서비스라는 취약점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손꼽힌다. 이를 통해 SK텔레콤은 사실상 이동전화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로 올라서게 된 발판을 마련했다.
TTL이 성공하자 그 여세를 몰아 등장한 세그먼트 브랜드가 ‘Ting’과 ‘UTO’. 가장 최근에 출시된 카라는 그동안 마케팅 사각지대였던 30∼40대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은 브랜드다. 현대 여성의 거침없는 모습을 표현한 ‘카리스마’와 우아한 미를 지닌 꽃 ‘카라(calla)’를 합성, ‘여자·아내·엄마·친구’라는 복합적인 이미지를 창출했다.
특히 최근에는 ‘준’이라는 동영상 프리미엄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서비스 브랜드는 한층 진일보하는 모습이다. “기술에 치우친 사업자 중심의 일방적인 시각을 배제하려 했다. 브랜드에 친근감을 주고, 쉽게 부를 수 있는, 친구와 같은 느낌을 전달해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다.” 홍보실 허재영 과장이 설명하는 준의 탄생배경이다.
준은 3세대(G) 이동전화 서비스에 근접하면서 고객의 삶의 양태를 변모시킬 수 있는 계기로서 접근했다. 기술진화가 빚어낸 첨단 이동통신 서비스는 더이상 고객과 동떨어진 미래상이 아닌, 바로 ‘현재’ 친숙한 개념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주문형비디오(VOD)·주문형음악(MOD)·TV·캠코더·게임기 등 다종다양의 매체형 서비스로 준을 확대하면서, 더욱 친숙한 브랜드로 심어나갈 계획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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