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나 생각을 뜻한다. 그 말 자체로 보면 나쁘거나 좋은 의미도 아닌 사실 그 자체다. 철학이나 사회학적으로 보더라도 대상에 대한 가치가 배제된 중립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를 자극을 주지 않고 제시해 마음에 떠오르게 하는 정신분석학적인 자유연상법으로 추억을 떠올리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부정적 요소는 망각에 의해 걸러져 아련하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되살아난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상식을 깬다. 살인과 추억을 연결시킴으로써 마치 살인자의 추억을 연상케 하는 듯하다. 컬트 영화라면 모르겠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영화로서는 제목이 가당찮아 보인다. 그것도 희대의 연쇄살인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임에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나마 “두번 다시 이러한 참혹한 사건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제작사 측의 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과거의 참화를 돌이켜 보고 그것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은 의미있는 일이다. 최근 ‘1·25 인터넷 대란’을 재조명하려는 각계의 시도도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25 인터넷 대란은 SQL 오버플로 웜의 공격에 의해 트래픽에 과부하가 발생, 무려 9시간 동안 인터넷을 마비시킴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피해국이 됐다.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해자가 가려지지 않은 채 ‘용의자’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살인의 추억’ 사건이 더 섬뜩한 것은 끝내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 대란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건의 가해자를 가려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빼놓지 말아야 할 점은 미국이 9·11 사태 이후 ‘국토안보부’를 설치한 것처럼 우리도 대증요법이 아니라 시스템과 조직으로 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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