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사스와 위기관리

◆이성규 팬택 사장 skiee@panteeh.co.kr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에 오르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산악인들은 전한다. 숨쉬기와 걷기 등 가장 기초적인 활동마저도 제한받는 상황과 언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르는 극도의 공포감에 짓눌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중국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공포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처음에는 괴질이라고 불렸다. 괴질은 원인을 모르는 난치병을 일컫는 용어다. 이 괴질에 사스라는 병명이 붙여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괴질임에 틀림없다. 주위에서는 더위가 본격화되면 사스가 잦아들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불투명하다.

 최근 발표되는 통계자료들을 보면 아직까지는 사스로 인해 매출감소, 이익률 하락 등의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피해가 각 기업에 많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각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해발 3000m 이상의 고지에서 느끼는 산악인들의 심정을 경험하게 하는 듯하다.

 얼마 전 종전된 이라크 전쟁 때도 한국경제 전체가 크게 출렁거리며 경기악화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었다. 유가급등과 전쟁수행국가의 경기 불안정으로 인한 수출감소 전망 등이 큰 원인이었다. 하루에 3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는 주가지수 등이 불안한 경제상황을 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스로 인한 위기의식은 이라크 전쟁 때보다 훨씬 더 고조된 것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사스가 어디까지 확산되고 장기화될지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며, 이로 인해 소비심리 위축과 수출차질 등의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요즘 직원들에게 사스 발생지역으로 중요한 업무상 출장을 요청하면 당사자보다는 가족들이 크게 불안해한다는 보고를 듣는다. 벌써 주요 기업들에서는 최소의 인원을 제외하고 중국에 파견된 직원들을 본사로 귀국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불가피하게 사스 발생지역에 출장을 가는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한국에 돌아온 후 약 10일 정도 회사에서 지정한 숙소에서 지내도록 하는 등 만약의 경우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사스가 기업경영에 있어 위기관리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듯도 하다. 아직까지도 주먹구구식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하는 안이한 자세로 사스와 같은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기업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 기업인으로서 점검해봐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사스와 비슷한 발음이 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전자파흡수율’을 의미하고 ‘사’로 발음하는 SAR(Specific of Absorption Rate)다. 그래서 뉴스에서 사스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강박관념과도 같이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SAR와 연관되어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분명한 의미의 차이가 있지만 이 두 단어 사이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회사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이다.

 SAR를 관리하기 위해 장비와 인력 등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제는 사스와 같은 위기관리를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다. 위기관리 전담조직과 위기관리시스템의 작동방안을 정립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의 위기관리 마인드를 제고하고,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세부 시나리오의 구축을 위해 힘쓰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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