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빅이나 비디오로도 보지 마세요. 이 영환 정말 극장에서 숨죽이며 봐야 제맛이구요….” “5번 봤는데도 후회하지 않고 질리지도 않습니다. 배우들 연기가 진짜 최절정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살인의 추억’에 대한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이 개봉 14일 만에 전국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기록적인 흥행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개봉 열흘 만에 전국 관객 200만을 돌파한 상반기 최고 흥행작 ‘동갑내기 과외하기’에는 못미치지만 스크린 수가 51개에서 60여개로 개봉 초기보다 늘어난데다 서울은 물론 지방 관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상승세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오랜만에 평론가들과 관객의 반응이 일치한 작품이 나왔다는 점에서 영화계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섬세한 연출=‘살인의 추억’이 이처럼 흥행성공을 거두고 있는 요인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형사의 서로 다른 스타일 배치에 있다. 시골형사 송강호(박두만 역)는 일단 잡아다 놓고 ‘주먹과 발’로 시작하는 ‘육감수사’형이고, 서울서 자원한 김상경(서태윤 역)은 기록에 기반한 ‘과학수사’ 스타일이다. 또 각기 다른 형태로 범인에 접근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겪는 괴로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는 범인에 대한 분노, 공소시효를 훌쩍 넘길 동안 피해자들이 겪었을 슬픔과 기막힘 등 표현력은 압권이다.
◇주·조연의 빛나는 연기=송강호와 김상경 두 주역의 연기는 영화의 깊이를 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송강호 영화에 대한 관객의 믿음을 그는 저버리지 않고 있다. 시골형사역을 해내기 위해 8㎏이나 몸무게를 찌운 송강호의 연기는 잡히지 않는 범인에 대해 점점 늘어가는 분노와 좌절을 관객에게 그대로 스며들게 한다. 김상경은 첫 번째 영화 ‘생활의 발견’ 이후 ‘배우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잠재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두 번째 영화에서 살해당한 여고생의 속살을 덮어준 후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비오는 산비탈을 내려오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미국에서 온 유전자 분석 리포트를 읽고 분노에 떠는 눈빛은 그만이 연출할 수 있는 명연기다. 유전자 감식까지 의뢰받은 용의자 박해일은 ‘프라이멀피어’에서 섬뜩한 눈빛을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에드워드 노튼이 떠오를 만큼 짙은 인상을 심어줬다.
◇실화를 바탕으로= 실화는 허구 이상의 감동을 준다. 실제 있었던 미결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뿐 아니라 당시 있었던 수사과정의 에피소드를 이 영화는 그대로 재현했다.
박두만이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집요하게 수사한 뒤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가짜 나이키’ 운동화까지 사줬던 유일한 목격자 백광호는 열차에 치어 숨진다. 실제로 열차사고로 숨진 용의자가 있었다. 서태윤이 등장하던 장면에 화면을 스쳤던 허수아비는 실제 있었던 물품이다.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죽는다’는 문구도 같다. 철저한 기록조사, 실존 인물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나온 결과다.
◇적절한 시점의 유머=주먹부터 나가는 극중 시골형사 박두만과 조용구, 그리고 속옷차림의 용의자 백광호가 나란히 앉아 80년대 최고의 수사드라마 ‘수사반장’을 시청하고 있다. 증거도 없이 자백에만 의존하며 지리한 싸움을 계속하는 형사와 용의자, 그 사이에 흐르는 ‘수사반장’ 시그널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형사. 이들 장면은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백광호에 대한 미안함에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 운동화를 사다주며 나이키라고 우기는 형사의 모습에서는 유머를 느끼게 한다.
◇피해자에 대한 예우=‘살인의 추억’은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으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고 있다. 실제 미결사건으로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10여년 전의 살인사건을 아픔과 분노가 공존하며 재미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터치로 완성해냈다. 유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 봉준호 감독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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