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연간 6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IT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너나없이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 정부 IT물량은 규모는 물론이거니와 파산 염려가 전혀 없어 대다수 IT업체들에 그야말로 ‘꿈의 물량’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업체들은 정부와의 이같은 막대한 사업이 자금난 해소에 즉각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비록 600억달러라는 막대한 수요처임이 분명하지만 대정부 IT사업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고 여기에 연줄도 크게 작용한다고 말하고 있다.이런 까닭에 자금과 인력 등이 열악한 신생 IT업체들이 대정부 IT물량을 따내기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고 관련자들은 불평하고 있다.
최근 미 국방부에서 계약을 따낸 샌타크루즈 소재 소프트웨어 업체 타란텔라의 랜디 브레시 수석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정부와 일할 때는 최소한의 권모술수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잘라말했다.
연방정부와의 계약은 신규 업체들을 겁주는 어려운 전문용어와 각본으로 가득차 있어 마치 ‘내부자들의 운동경기’와 같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투덜거리고 있다.
이들 정부 규정은 엄격할 뿐 아니라 서류작업도 엄청나게 든다. 대부분의 신생 업체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물론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겹겹이 쌓인 관료주의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항구에 들어오는 화물을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한 버클리 소재 신생업체 컨테이너트랙의 레드 스미스 CFO는 “정부 IT물량을 따내기 위해서 어디로 전화해야 할지, 또 어떤 방식으로 헤쳐나가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경험도 전무한 상태”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미 정부는 이같은 신생업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상무부 산하 기관인 기술청 (Technology Administration)으로 하여금 설명회를 열도록 했다. 이의 일환으로 최근 팰러앨토 소재 셰라톤호텔에서 실리콘밸리 업체들을 대상으로 열린 정부 IT물량 수주 공개 포럼은 참석자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 포럼에는 국방부, 상무부, 국토안보부 등 정부측 구매담당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정부기관뿐 아니라 과거 미국전자협회(American Electronics Association)로 알려졌던 하이테크 업종 단체인 AEA도 다음달말에 하이테크 업체들을 위해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정부 계약과 관련해 묘책이 없다면서 인내가 미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성급히 1∼2분기안에 매출을 올리려는 업체들은 정부 계약 문에 발을 들여놓는 데만도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현실을 주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위싱턴DC 주변에는 정부 물량을 따내려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서비스 전문업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 컨설팅 기업으로 시어헤지스그룹, 오키페, 디자인투딜리버리 등이 있는데 디자인투딜리버리 같은 경우 사업개발에서 제안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컨설팅업체의 지원 외에 정부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 즉 연고를 통한 ‘위로부터의 약속’도 절실하다.
회원사들이 연방정부의 조달시장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AEA의 로레인 라벳 CFO는 “전체 조직이 연합해 매달리지 않을 경우 정부 수요를 낚아채는 데 있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기업 애플리케이션 관리 및 유지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있는 어바인 소재 퀘스트소프트웨어는 3년 전 첫 정부계약을 따낸 이후 전체 매출의 12%를 정부측에서 올리는 등 모범적인 기업에 속한다. 퀘스트는 정부 물량 확대를 위해 공공부문 직원수를 3명에서 35명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퀘스트에서 공공부문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폴 가버 부사장은 “대정부 물량수주 성공은 상층부의 로비 등 고위급 정부 정책결정가들과의 관계에 주로 달려 있다”며 ‘비법’을 밝혔다. 일례로 퀘스트가 최근 미 육군으로부터 수주한 250만달러 계약은 2001년 11월 퀘스트 최고경영자(CEO)와 육군 최고정보책임자(CIO) 사이의 안면 익히기 모임에서 비롯됐다. 이 모임 이후 공식 제안서가 육군 최고기술책임자(CTO)에게 전달됐고 이어 지난 달 마침내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퀘스트는 육군의 최고 정책결정가와 접촉을 시도하기 훨씬 전에 이른바 GSA (Government Services Administration) 계약을 통해 처음으로 사업을 따내는 등 물밑작업도 활발히 벌였다. GSA 스케줄은 정부기관들이 종이 클립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모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업체들의 명단을 일컫는다. 지난해에는 약 120억달러어치의 정보기술 제품이 GSA를 통해 구매됐다.
하지만 GSA 스케줄을 이용한 업체들의 제품 판매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감사를 위한 장부 공개와 매출 등 재무실적에 대한 자세한 정보공개가 필수적이다. 신생업체들에게 있어 이 같은 보고 의무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더구나 명단에 오른다고 해도 주문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고 단지 낚시면허와 마찬가지로 사업을 따낼 수 있는 승인만을 받은 셈이 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직접 상대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하청 기회를 노리고 있다. 온라인 영상회의 기술을 갖고 있는 샌타클래라 소재 래티튜드커뮤니케이션스는 4년 전 시내전화사업자 버라이존과의 제휴를 통해 정부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이 회사의 빌 오델 마케팅 부사장은 “이미 안정된 관계를 맺은 건실한 업체와 제휴를 맺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업체들이 제휴하고 싶어하는 인기있는 업체로는 오랫동안 연방정부와 함께 사업을 해온 노드롭그루만이나 록히드마틴 같은 방산업체들이 일순위로 꼽히고 있다. 이들 업체는 시스템 활용방법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정부기관들과 이미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하청계약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와 사업을 모색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애로를 겪기도 한다. 노드롭의 경우 하청업체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1년 전에 원스톱 등록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신생업체들이 정부계약 수주를 추진하기 전에 민간에서 실적을 올리는 게 우선시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보수적이라 위험을 감수하기 전에 이미 입증된 기술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정부 물량은 여전히 매력적인데 시어헤지스그룹의 공동 창업자 엘리자베스 시어는 “정부 물량은 보통 민간계약보다 규모가 큰 데다 꾸준히 구매가 이루어져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는 황금광맥”이라며 “초기 투자를 잘 극복하기만 하면 10배의 대가를 뽑아낼 수 있는 시장”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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