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후 우리 산업계가 먹고 살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에서 출발한 차세대 국가 성장엔진 발굴사업을 놓고 기획단계에서부터 관련 부처간의 주도권 경합이 치열하다.
비슷한 시점에 과기부·산자부·정통부 등 관련 부처가 유사한 프로젝트를 추진, 어떤 식으로든 사전조정이 필요해 결과에 따라 추진주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는 21세기 들어 범정부 차원에서 시도되는 사실상 첫 초대형 장기 R&D 프로젝트란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각 부처가 적극 추진중인 프로젝트가 각각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는 같을 지 몰라도 서로 추진체계와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향후 적지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기술이냐 산업이냐=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둘러싼 과기부와 산자부는 ‘기술’을 강조하는 과기부와 ‘산업’을 강조하는 산자부의 논리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과기부는 5∼10년 후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국가 R&D 주무부처인 과기부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산자부는 그러나 기술은 결국 제품에 녹아드는 것이며 이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산업의 중심이 될 일류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므로 산자부가 중심에 서는게 맞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산자부의 한 실무 관계자는 “최근엔 기술 융합화가 가속화되고 기초기술과 응용기술의 구분이 불명확해지고 있다”면서 “이 프로젝트는 특히 장래에 우리의 ‘먹거리’를 찾자는 의도인 만큼 산자부 중심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주체와 체계에 있어서 정통부는 한발 물러서 있다. 정통부는 성장엔진 중 IT분야만 주관하겠다는 생각이다.
◇국과위냐 국무조정실이냐=이번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 주도권 다툼은 표면적으로 과기부와 산자부간의 문제로 비춰지고 있지만, 결과에 따라선 추진주체가 국과위와 국무조정실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포스트 반도체-초일류 기술 국가 프로젝트’란 과기부안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의 추진주체는 대통령 직속 국과위다. 국과위를 축으로 산하에 부처별로 2명씩(1명은 민간전문가) 참여하는 ‘미래전략기술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실제 아이템 발굴 및 개발은 부처별로 균등하게 추진하도록 돼 있다.
반면 산자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및 육성’안은 기본적으로 국무조정실을 정점으로 한다. 따라서 국무조정실을 축으로 산자부가 전체적인 실무 시스템을 총괄하고 관련 부처가 개발을 담당하는 형태다.
그러나 과기부는 국무조정실을, 산자부는 국과위를 서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국과위는 과기부가 간사를 맡고 있어 과기부 지향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게 산자부의 생각이다. 과기부는 기존 국과위가 있는데 굳이 국무조정실에 새로운 추진체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조정 가능할까=기본적으로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겨냥한 부처별 기획안은 목표가 같은 만큼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노무현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각 부처간의 정책조율을 유달리 강조해왔고 투자비만도 수조원대에 이르는 매머드급 국가 개발프로젝트를 동시에 두개씩 추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3일 두 부처를 포함한 12개 부처 국장급 관계자들이 참석한 국과위 정책전문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상정, 실무수준에서 논의가 이루어졌다.
과기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앞으로 국과위 운영위, 본회의 등을 거쳐 조정을 위한 논의가 계속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다양한 루트로 조정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자부 관계자는 “국과위는 대통령 직속의 과학기술 정책조정기구이긴 하지만 간사인 과기부의 입김이 강해 본래의 조정기능이 퇴색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보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정통부도 산자부와의 경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TV의 경우 수신기 분야가 산자부의 몫으로, 정통부는 기술표준화·방송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차별화한 것처럼 조정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등 그동안 우리 경제를 좌우해온 핵심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새로운 동력원을 찾는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다만 두 부처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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